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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만행(4) 제주의 바람




여관에서 맞는 아침이 어색하다. 방은 따뜻했다. 창문을 열어 찬 공기를 들이마실 때 아직 하늘은 우중충하다. 가볍게 눈발이 날리고 있다. 이리 저리로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긴 채 가는 눈발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우리는 짐을 챙겨 무작정 나섰다. 시간에 맞춰 한(韓)이 나왔다.




일단 지도를 펼쳐들고는 제주도의 북쪽에서 왼쪽으로 돌기로 했다. 제주도의 주요도로와 지명이 기록된 큰 지도를 어렵게 구했다며 한은 자랑스레 말했다. 공항이나 여객터미널에는 특정업체에서 광고를 겸한 다양한 지도는 있지만 이런 지도는 특별히 아는 사람이 요구해야 내놓은 지도라고 하면서 말이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요즘은 차량마다 내비게이션이 달려있어 지도를 보는 일들이 적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방도시를 찾아다니거나 도로를 찾을 때는 으레 지도를 펼쳐들었다. 책으로 된 각 지방도시 지도를 매년 구입하기도 했다. 길 떠날 때 제일 먼저 챙겨야 했던 물건이다. 그때 지도를 보며 몇 번 국도, 몇 번 도로 하면서 지도를 짚어가며 길을 가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는 조금 다르다. 지도를 짚어가면서 여기쯤일까 싶으면 벌써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잠깐사이 제주도 한 바퀴를 돌아버릴 것 같이 성큼 성큼 지나가는 것이다.




“제주도는 골짜기가 많고 시골이라고 해도 차가 있으면 한 시간 안에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구멍숭숭한 돌담

얼마쯤 갔을까? 밭의 경계선 따라 돌담이 예쁘게 서 있다. 이전에 왔을때 만났던 그 돌담이다. 구멍 숭숭한 현무암들이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밭둑에 쌓여서 밭농작물들을 바람으로부터 보호도 할 요량으로 그리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아마도 밭일하다가 손끝에 차이는 돌들을 모아서 밭둑으로 내놓은 것이 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돌 쌓아놓은 것이 엉성할 정도다. 빈틈없이 빼곡히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이 또한 구멍이 숭숭하다. 제주에서는 쉽게 이 돌담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제주도에서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 돌담과 돌담길을 보며 마음을 빼앗겼다.







제주도에는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고 불리어왔다. 그 가운데 바람이 많다는 것의 의미는 ‘바람이 부는 날이 많다’라는 의미보다 ‘강풍의 빈도가 높다’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북태평양위에 떠 있는 섬으로 기압의 변화가 심하고 섬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심하다. 바람이 많은 것은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바닷가 논둑의 까마귀 떼들은 바람 때문에 날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보려하는 사람들을 가만 서있게 두지 않는다.

이 많은 바람을 그대로 안고 넉넉히 서 있는 것이 돌담이다. 구멍 숭숭한 돌들을 구멍숭숭하게 쌓아 올린 담이다. 엉성해보이는 이 담은 밭일하다가 나온 돌들을 밭 언저리에 대충 쌓아놓은 것 같다. 높지도 않고, 반듯하지도 않은 이 담은 보면 볼수록 넉넉한 마음이 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많은 바람을 막기 위해서 돌담이 필요했고, 그 바람을 그대로 통과시키면서 그자리 그대로 서 있게 만든 조상들의 지혜라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를 만나면 숙연해진다. 얼마나 오랜세월의 인고끝에 나온 결과물일까 싶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현대사회의 개발로 잘 짜맞춘 담장은 그 지혜를 싸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또 나는 그 지혜를 얼마나 담고 있나 돌아봐진다. 그 많은 바람을 그대로 받아 안으며 살고 있는지 춥다고 그 바람을 외면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진다.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꽁꽁싸매고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들의 지혜를 보며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제주의 돌담을 보면 반갑고 고맙다.


제주의 바람

제주에서 부는 바람의 속도와 양을 조사해보면 해안가와 내륙, 여름과 겨울 등 위치와 계절에 따라 바람의 양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육지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여름보다는 겨울이 매서운 바람이 분다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제주의 바람을 만난 것일까?

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제주도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듯 하다. 초가집의 지붕에 새끼줄로 그물처럼 매어놓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육지의 초가지붕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곡선형 올레, 대문 대신 정낭 등을 설치한 것도 강한 바람을 피하려는 삶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해안가의 나무들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누워서 크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부는대로 계속 휘었다가 그게 굳어져서 바람이 멎어도 그대로 휜채로 자라는 것이다. 오랜 습관으로 인해 형성된 사람의 업보가 이와 같을까?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할 때 해안선을 따라 차를 달리면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편향된 나무였다. 처음볼때는 차창밖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있나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태평양의 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편향된 나무는 미국의 서부해안이나 제주도의 해안이나 다를 바가 아니다.


여름철 바람은 태풍이 불때 강풍을 동반하지만 비교적 약하다. 그래서 남쪽의 감귤농장은 해안쪽에 발달해 있다면 북쪽에는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것도 바람을 피해서 들어온 것이라 한다. 또 제주지역에는 이러한 바람을 이용한 풍력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의 풍력발전소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도땅콩’이라는 것을 샀다. 이름이 생소해서 물어봤더니 제주도옆에 우도라는 작은 섬에서 나는 땅콩인데, 일반적인 타원형의 길쭉한 땅콩이 아니라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껍질째 먹어도 괜찮다며 한(韓)은 권한다. 우도에 대해서도 처음 들었고, 우도땅콩에 대해서도 처음듣고 보게되었다. 혹시 제주도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우도땅콩을 권하고 싶다.


바닷가의 바람과 파도는 우리의 생각과 몸을 멈추게 했다.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파도의 거품들만 모였다가 바람에 여기 저기 깃털처럼 날리기도 한다. 우리는 늦은 아침에 점심을 겸해서 먹기로 했다. 가까운데 맛집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