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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만행(1)여행을상상하다



여행을 상상하다

3년 천일동안의 활동속에 일을 핑계로 여기 저기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도 하지만 일이 끝나는 즈음에 주어지는 열흘간의 시간은 휴가같은 휴식이다. 일에 대한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 밴 습관마저도 내려놓기 위한 일정으로 주어지는 시간이다. 공동체생활에서 '휴가'는 어색한 공백이고 새로 채워야 할 여백이라 익숙하지 않을때는 차라리 '올드보이'가 된다.

물론 삶의 여정속에서 공동체삶은 한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의 열정과 원력으로 참여했지만 중간에 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열흘이고 한달이고 긴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되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거나 재발심을 하게된다. 그런 휴가와는 사뭇다르다.

천일동안의 일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다양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휴가'는 시작된다. 지난 3년전에는 <휴가 떠나기>가 어색해서 처음 며칠은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그전 3년은 형제들 집에 들러서 오랜만에 ‘인사’를 겸해서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휴가는 ‘휴가다운 휴가’를 처음부터 계획해야겠다는 다짐을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해왔다.

작년 초, 그러니까 3년의 일정중 마지막 해가 시작될때 있었던 일이다. 셋째누나는 조카가 호주여행을 보내달라고 떼쓰기작전에 돌입했는지 전화가 왔다.

“너 연말에 해외여행 갈거라며?”
“어? 응~”
“어디로 갈건데?”
“현재 계획은 터키와 그리스를 돌아 북아프리카쪽의 이집트 정도를 돌아보고 오려고 계획중인데, 왜?”
“지웅이가 자기도 해외여행보내달려고 떼쓰고 있으니 데리고 다녀오면 안돼?”
“못할 것도 없지, 사전준비 많이하라고해. 영어공부도 하고, 그 지역에 대한 정보도 검색해보고 미리 학습을 많이 해야지”

돈도 여유도 없던 나에게 조금은 허풍섞어서 터키, 그리스 운운하며 해외여행을 꿈으로만 계획했던 일이 조카덕분에 얹혀서 갈 수 있으려나 싶었다. 조카는 올해 중3이란다. 이렇게 조카와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터키여행 계획은 한참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여행금지뉴스가 나오면서 호주여행으로 바뀌었고, 다시 비용을 고려해서 동남아시아 여러지역을 둘러본다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연말이 다가오면서는 바빠서 휴가에 대한 생각과 계획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연말이 되어서 다급해진 누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너는 어떻게 된 것이 연락도 안되고 그러니?”
“응, 요즘 연말에 정리할게 많아서 바쁘네!”
“그러면 그렇다고 전화라도 한 통화해야 할 것 아니니? 지웅이는 벌써 방학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할거니?”
“연말에 비행기값도 비싸고, 예약도 미리안해서 어려울 것 같은데?”
"너는 돈 없니? 그돈이 얼마된다고 비싸다고 핑계니?"
내가 돈버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돈 이야기할때는 꼭 나에게 '넌 돈없니?'하면서 재차 묻는다.

에궁에궁, 졸지에 이상한 삼촌이 되어버렸다. 조카와 함께 국내여행이라도 고생고생하며 다녀볼까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일단 어떻게 될지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 취소를 하고 시간이 나면 계획을 하고, 떠나면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휴가 첫날에도 전체회의가 잡혀있었던 것을 보면 그 결정이 참 유효했던 것 같다.

제주를 상상하다.

3년이나 붙어서 일하던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제주여행을 상상하면서 일단 순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가 항공으로 서울에서 바로 제주로 넘어가면 순천으로 내려가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비싸겠다고 동료들은 투덜댔다.

"우리가 언제 계획대로 되었니? 혹시라도 배가 없으면 이산가족 되는 거니까 일단 내려오세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제주도가 안되면 남해안이라도 한 바퀴 돌지 뭐~"

일단 나는 진주에서 나머지 동료들은 서울에서 출발해서 순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주에서 순천은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지만 서울에서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아마도 10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으니 새벽 첫차를 탔을게다. 진주를 떠난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이방인처럼 터미널을 찾았다. 평일 터미널에는 주로 노인들 모습이다.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시골노인들이 대부분인 버스는 운전수가 대장이다. 뭘 물어도 친절하지 않다. 잘못건드리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의 대장...

우리들은 각자의 제주도를 상상하며 순천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