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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만행(3) 제주에서 만난 첫 음식 : 제주고기국수



제주의 땅은 먼 옛날 저항의 땅이었고, 유배의 땅이었다. 또 김만덕을 길러낸 땅이었고, 제주의 거대한 설문대 할망의 신화가 있는 곳이다. 지금은 해외여해을 주로 가는 것 같기도 하더만 갓 결혼한 부부의 신혼여행지의 대상이기도 했다. 또 그 전에 대학을 다닐때는 졸업여행지로 3학년말이 되면 다녀오면서 추억을 만들기도 하는 그런 곳.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가 본적이 없고, 대학다닐때는 다른 일 하느라 정신없어 가지 않고서는 ‘돈’이 없어 가지 않았다고 둘러댄 제주도다.



사실 제주도는 처음은 아니다. 2003년인가 그 다음해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공동체의 환경실천운동사례에 대해서 발표해 달라고 요청해서 가본적이 있다. 그때는 비행기타고 가서 어리둥절해서는 데리고 다니는 대로 가서 저녁먹고 곧바로 강의장에서 강의하고는 숙소에서 잠자고 다음날 오전나절 나를 불러준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고서는 도망치듯 빠져나온적 있다.

‘강의’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제주도를 혼자서 그렇게 구경다니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본래의 임무인 ‘강의’에만 충실해야지 다른 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것 만 같아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때 MD녹음기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바닷가의 파도소리를 녹음하고, 바람소리를 녹음했다. 그리고 우연히 강의후 뒷풀이 공간에서 만난 제주도 민요를 하는 사람의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다. 그 후 한참을 되풀이 해서 들었다. (그때 그 디스크를 찾아서 소리를 다시 들어봐도 깨끗하게 녹음된 것이 가만히 혼자 있게 된다. 윈터홀릭에서 겨울 한복판의 도시에 홀로 서 있는 것 처럼 나는 제주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길가에 혼자 서 있게 된다.)

그날 하루 휴가를 내서는 육지에서 온 나를 안내한다고 함께 다녔던 친구는 지금은 환경운동연합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한다. 그때 제주에서 오른쪽으로 돌며 성산포까지 왔다가 밥 한끼 먹고 돌아갔는데 그 사잇길에서 만난 동네와 오름에 오르기도 했고, 4.3항쟁의 역사현장에도 안내해주기도 했다. 어느 마을은 4.3때 마을전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삿날이 같은 날이라고. 짧은 반나절의 몇 시간동안 급한 마음을 안고 대충 제주도를 보고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눈과 바람으로 한참을 돌았지만 그때만큼 보고 느끼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주도하면 그 친구가 늘 떠오른다. 고맙다.

배에서 내려서는 제주에 사는 백일출가 행자출신인 한(韓)을 만났다. NGO실습때 우리부서에서 함께 일했던 것도 있지만 워낙 붙임성이 좋아 쉽게 어울릴 수 있었고, 처음 계획과는 달리 우리들의 모든 일정에 함께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네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가자는대로 갈테니 안내 잘해줘!”
“일단 배고프니 먹으러 가자!”

저녁에 제주땅으로 들어가서는 처음 한 것이 먹을 곳 찾는 것이었다. 트럭에도 ‘제주넘버’를 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제주도에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며 떠들어댔다. 첫날저녁의 메뉴는 ‘제주고기국수’였다. 삼성혈 근처에 제주도에서 유명한 고기국수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낮이라 한들 어디가 어딘지 알겠는가마는 밤이라 더욱 어딘지 분간하지 못하고 한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갔다. 여러집중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하면서 들어가서는 고기국수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제주도에는 바다음식뿐만 아니라 고기도 즐겨먹는데 돼지를 잡으면 그 고기와 뼈를 고아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경상도음식중에 돼지국밥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돼지삶은 국물에 고기와 밥을 넣어 먹는 것이 돼지국밥이라면 제주도에는 국수를 넣어서 고기국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돼지를 잡은 잔칫날 흥을 돋우며 먹던

제주 고기 국수


제주도의 ‘고기 국수’는 비교적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국수다. 제주도에서는 잔칫날 돼지를 잡아 손님에게 대접하곤 했는데 돼지의 고기는 삶아 편육으로 내고, 뼈는 발라 푹 곤 뒤 이 국물에 면을 말고 돼지고기 편육을 고명으로 얹어 내던 데서 유래했다.
제주도의 잔치 음식인 고기 국수를 대중화한 식당에 가면 뽀얀 돼지 뼈 우린 국물에 칼국수 면보다 조금 가는 대면을 넣어 삶은 뒤 ‘돔베고기’라 부르는 삼겹살 편육, 송송 썬 대파, 채 썬 당근이 고명으로 얹어 내온다.
‘돔베’란 제주도 방언으로 도마를 뜻하는 데, 편육을 나무도마에 얹어 내면서 붙은 이름이다. 제주도의 고기 국수는 서울에서도 맛볼수 있는데, 1년 전 논현동에 문을 연 ‘삼대국수회관’은 제주도 본점에서 만드는 법을 직접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돼지고기 삼겹살과 돼지 뼈 등의 주요 재료를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공수해 사용하기 때문에 현지의 맛과 거의 흡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서울 사람들이 넓은 면을 싫어해 대면이 아닌 중면을 사용한다는 것. 돼지 뼈 육수에 도톰한 삼겹살 편육이 넉넉히 들어 있어 한 그릇 먹고 나면 제법 든든한 고기 국수는 국물에 다진 양념과 김 가루를 푼 다음 부추김치를 얹어 먹는다.
삼대국수회관 논현점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24-15 전화 02-3446-1186 [출처] 행복이 가득한 집 (2010년 10월호) 중에서


여기 소개된 곳은 제주고기국수이면서 식당은 논현동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주도까지 어찌가나 싶었는데 논현동이라 다행이라 여겼지만, 결국 제주도에서 직접 고기국수를 맛본뒤에 그 맛을 생각하며 뒤에 찾아갔었다.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된 코리안 누들로드를 함께 탐방하자고 약속했던 ‘박(朴)’이라는 분이 계신데 제주고기국수를 먹으러 논현동으로 모시고 가야겠다.


▲ 국수마당 본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 1034-19번지 / 064-727-6001



우리가 찾은 곳은 <국수마당 본점>이다. 고기국수를 주문하고는 돔베고기도 하나 추가로 주문했다. 제주도까지 왔으니 제주도 음식을 확실히 맛보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진이 너무 먹음직스럽게 도마위에 수육이 놓여 있지 않은가? 입가심으로 먹을 법한 국수를 끼니로 떼우고, 그것도 제주에서 먹는 첫 음식으로 먹었는데도 서운함보다는 기분이 좋다. 국수는 쫄깃하고, 국물은 따뜻하고 뽀얗다. 일본식 라멘을 먹어러 가면 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일본과 제주도가 가까워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일본식 라멘중에 뼈를 곤 물에 수육을 고명으로 얹어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먹으면서 제주고기국수를 떠올렸다.



식사후에 제주대학교근처의 언덕에서 제주도의 야경을 보러갔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폭설주의보가 내려질 만큼의 눈이 올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첫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모텔에 방을 잡았다. 한의 어머니가 친구분이 운영하는 모텔을 알아봐주신것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어머니가 돈 계산을 하신 모양이다. 우리들은 수학여행 온 중학생처럼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 강한 강박관념이 없어서인지 별 일없이 하루를 정리했다. 제주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을 준비를 하면서...


▲ 글로리모텔 : 한(韓)의 어머니 친구가 운영하는 시외버스터미널근처의 모텔로 깨끗하고 방이 따뜻하다. 064-759-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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