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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강원도의 맛 : 논골식당의 손맛





김소영 여섯 번째 편지
퇴직후에는 카페를 열고, 사진을 열심히 찍으러 다닐 계획을 하고 있는 네 모습이 좋더라. 엄마의 음식솜씨와 아빠의 미각을 그대로 전수받았다며 사찰음식도 배우겠노라고 다짐하는 것도 좋았어. 네 음식솜씨를 언제 볼 수 있을까마는 오늘은 강원도에서 먹었던 음식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0년뒤의 네 모습이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논골식당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영월 > 태백 > 삼척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바람계곡에서 그렇게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어두워질때까지 계곡에서 바람의 소리를 듣다가 우리가 묵을 곳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을 곳은 논골식당~ '논골'이라고 하면 한자어 지명으로는 '답곡'정도가 될려나? 강원도의 깊은 산 사이로 해발 1000미터 가까이 되는 고갯길을 넘어 이 마을로 내려왔을때는 서울에서 먼 여정으로 이어져 온 곳이 아니라 다시 하늘아래 새로운 땅이 시작되는 느낌이었어. '논골'에서 느낄 수 있듯이 주변에는 모내기를 끝낸 무논이 넓게 자리하고 있더군. 호남평야같은 너른 평야는 아니지만 이 산많은 강원도에서 나름 논이 많이 때문에 그렇게 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논골식당까지 서울에서 3시간 30분 걸렸는데 이곳은 함께 동료의 '이모님 댁'이었어. 민박도 함께 운영하는 식당인데 민박, 식당의 개념보다 오랫만에 이모집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갔던거지. 논 사이의 국도변에 이 한집만 떡 하니 있어. 이런 골짜기에 무슨 식당이며, 또 그렇다고 치더라도 장사는 잘 되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 이모부는 최근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고 이모혼자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이모님은 여기 민박을 겸한 식당뿐만 아니라 집주위의 논에 물을 대고 빼기도 하고, 또 한낮에는 논에 김매러 잠깐 다녀오기도 하고 집주위에는 밭이 둘러 있는데 그곳에는 없는 야채가 없을 정도로 아주 다양한 야채들을 조금씩 조금씩 재배하고 있는데 모두 식당의 반찬들이 여기서 충당된다고 하더라구. 닭도 키우고, 소도 거의 100마리나 되는 규모로 먹이고 있었지. 이 많은 것을 혼자서 척척 해 내는 것을 보며 놀랍기도 했어.

친정이 안동이었는데 이곳 골짜기까지 어떻게 시집왔냐고하니, 지금의 남편이 군대있을때 소개받아서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로 사랑을 키워왔다고 하더라구. 처음 시집올때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버스도 하루에 두 대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쑥쓰럽게 하는 모습은 그 많은 일을 혼자서 억척스럽게 해내는  촌노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지.

오랫만에 찾아온 조카를 반기며 그냥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밥 내주듯이 척척 상을 차리더라고. 우리들 같으면 식단계획을 짜고 요리순서에 맞게 하느라고 부산스러웠을텐데 말이야. 논골식당의 주메뉴는 추어탕과 토종백숙인데 이모님 솜씨로 메뉴를 돌아가면서 해주시더라구. 사실 처음 계획은 우리가 음식재료를 준비해가서 거기가 식당이니 불좀 빌려쓰는 정도로 생각하고 갔는데 결국 해주는 음식 먹고 오는 꼴이 되었지.

식당유리벽에 메뉴중에 <메밀묵밥>이 있어 반가웠어. 여기서는 맛보지 못했지만, <묵밥>이라는 메뉴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옛날 어릴적 집에서는 메일이나, 도토리를 갖고 묵을 직접 만들어 먹었거든. 물에 담궜다가 떫은 기운을 빼고는 그것을 다시 갈아서 또 장작불을 계속 때면서 저어주어야 하는데 어릴때 엄마가 불때라고 하면 매캐한 연기가 싫어서 도망다녔던 기억이 많은데. 넓은 다라에 식히면서 굳히면 묵이 되는데 두부처럼 모를 큼지막하게 잘라내고는 다시 그것을 길게 잘라서는 뜨거운 국물에 말아서 양념간장 한 숟갈 넣고는 후루룩 후루룩 먹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시골을 떠나서는 그런 묵을 맛볼 수가 없는거야. 어디를 가도 접시에 묵을 두부처럼 곱게 잘라서는 서너개 올려서 내는거야. 너무 감칠맛나서 묵 먹는 느낌이 없었지. 그때를 기억하며 후루룩 후루룩 먹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언젠가 안성에서 <묵밥>이라는 것을 먹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어릴적 먹던 그것이었어. 조금 다른 것은 김가루를 넣고 차가운 국물에 말아서 먹는데 찬밥도 함께 넣어 먹는것이 조금 달랐지만 어릴적 먹던 그 묵밥이었던거지. 그이후로 식당에 <묵밥>이라고 적혀있는 메뉴를 보면 반드시 묵밥을 먹곤했지. 서초동에도 예술의 전당아래 <충청도 올갱이>집에서 이 묵밥을 하더라구.


그건 그렇고 우리가 먹었던 메뉴중에 토종백숙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닭장에 갇혀서 제품생산되듯 하는 지금의 닭하고는 틀린 맛이더군. 사실 조금 질기긴 하지. 어떤 양계업자가 닭을 놓아서 길러서 파니까 잘 안팔리더라는거야. 닭이 크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만큼 값도 비싸지니까 수지가 안맞는거지. 거기다가 사람들은 조금 질기다고 싫어하고 말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양계생산 시스템으로 바꾸어서 닭을 생산해 낸다고 하면서 하소연하는 것이, 지금 시중에서 우리가 닭을 먹는 것은 알에서 부화해서 20일만에 키워서 생산해 낸다는거야. 매일 불을 켜놓고 잠을 못자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어놓고, 성장촉진호르몬이 들어간 사료를 매일주면서 키운다고 하더라고.

그런 닭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건강한 닭을 요리한 <토종 백숙>을 우리는 맛본거지. 국물에 기름이 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더라. 온갖 약재를 함께 넣었다며 맛보라는데 그냥 훌쩍 훌쩍 먹어치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 육질이 질기다고 하지만 시중에서 우리가 먹는 것보다 질기기는 하지만 보들보들한 느낌의 육질이 입속에서는 흐물흐물 녹듯이 씹히더군. (군침돈다~)

직접 재배한 야채들로 밑반찬은 만들어진건데 이모님 음식솜씨가 장난이 아니더군. 그냥 일반 식당의 그것과는 좀 달랐어. 모양은 비슷해서 그냥 그 음식이 그 반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맛과 향이 조금씩 특이한 것을 알 수 있었어. 특히 강원도에서 많이 재배되고 생산되는 곤두레나물은 그동안 맛보던 나물과도 다른 경험이었어. 또 매실장아치는 새콤달콤한것이 많이 시지도 않고, 많이 달지도 않았어.

 

 

 

 

 

 


이모님 말씀으로는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근처에 일하다가 밥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군. 우리가 있을때도 매 끼니마다 사람들이 왔으니까 말야. 서울에서 3시간 30분, 근처의 바람계곡 덕풍계곡이 있어 여름에는 물놀이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군. 삼척이 지도에서 보면 바닷가에 있잖아. 여기서 차로 20분정도 나가면 호산항이라는 항구가 있는 동해바다가 나오는거지. 이런 지리적 여건들을 살펴볼때 여기는 <어느 국도변의 작은 식당>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 강원도의 산과 계곡의 바람, 그리고 동해바다 등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있고, 이모님의 특유한 음식솜씨가 그대로 살려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맛집>으로서 손색이 없더라고. 여름휴가때 아이들 데리고 한 번 다녀오면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해.



이모님의 억척스럽기까지 한 모습에서 고생스럽다는 생각보다 모든 일을 가볍게 툭툭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일을 어려워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네가 그렇게 병원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또 10년뒤의 삶의 구상하는 <수더분함>이 그런 모습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