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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편지(3) 강원도 너와집, 풍류를 안다



김소영, 세번 째 편지

네 이름자라도 앞에 떡하니 적어두어야 네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것 같아 붙인다. 오늘 네게서 받은 긴 답글을 보고 세번째 편지를 쓴다. 삼척 다녀온 이야기를 이어서 쓸께. 나중에라도 애들 데리고 한 번 다녀와봐. 아버지 생신은 잘 차려드렸니?

나는 보는 것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야. 고등학교땐가 만화를 처음보고는 엄청 재밌게 빠져들었던 기억이 나. 거의 하루종일 배깔고 만화봤던 기억도 있으니까. 엄청 많은 양을 본 것은 아니고 고작 몇권을 읽는데 말이야. 만화의 표정과 대사를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배경을 표현하는 기법이며, 색을 터치할때 작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것 까지 생각하면서 읽으니 몇 권 읽지도 않는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구.

예술의 전당이 가까이 있으니, 사진전시회나 디자인 작품전시회 등을 봐도 처음에는 30분 예상하고 갔다가 3시간을 훌쩍 넘긴적도 많아. TV는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거의 안보고 지내는데 가끔 명절때 집에라도 가면 채널 수가 너무 많더라구.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방송을 찾기 위해서 리모콘을 이리 저리 훌쩍 훌쩍 잘도 넘기더만. 나 같은 경우에는 적어도 한 채널에 5분 이상 시선고정하는 편이야. 바로 넘기는 것은 게임방송과 바둑방송은 그냥 넘기지만.

이렇게 보는것을 좋아하는 편이니 삼척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겠니? 어떤 사람들은 차만 타면 바로 잠으로 빠져들더만. 야~ 저기봐라, 여기봐라 하면서 깨우는 내가 얄미울지도 모르지. 그냥 그런 경치를 혼자서만 본다는게 너무 아까운거야. 서울에서 출발해서 영동고속도로는 여주휴게소까지는 자주 가는 편이라 금방가고 다시 문막휴게소를 지나 중앙고속도로를 내려갈때는 색다른 길이라 여기 저기 눈을 돌리기 바쁘지. 그러다가 다시 제천IC를 빠져나가 영월과 태백을 지나는 국도를 달릴때는 눈이 휘동그래지더라구. 그렇게 태백에서 고갯마루를 넘으니 완전 강원도 깊숙히 들어온 느낌이더라. 논보다는 밭이 많고, 평지보다는 산밖에 없고, 그 비탈진 산을 개간해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북한의 뙈기밭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 저런 모양이겠다 싶었지.


강원도 너와집, 풍류를 안다

강원도 너와집 체험장이라는 간판이 있어서 잠깐 차를 세우고 둘러봤지. 그동안 책에서 보아오던 강원도 특유의 가옥주택 양식이 너와집이었고, 그것은 나무껍질을 지붕에 덮어서 유명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나무껍질을 두껍게 벗겨서 얹은 것이 아니라 아예 나무를 도끼같은 것으로 거칠게 판자 모양으로 잘라서 얹었더구만. 언젠가 너와지붕아래 누우면 지붕사이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 그때는 나무를 얼기 설기 얹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고, 비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실제로 보니 내가 이해하는것과는 조금 다르더라.

나무를 판자처럼 조각내어 켜켜히 쌓아 올린 것도 맞고, 그 사이로 가끔 구멍이 숭숭해서 하늘이 보이는 것도 맞는데 비가 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면 물이 나무의 결따라 흘러내리기 때문에 비는 새지 않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의 층 사이로 비스듬히 하늘이 보이는 것은 가능하더라구. 참 운치있는 삶이다 싶었지. 흙벽이 조금의 틈을 통해 숨을 쉬면서 안과 밖의 공기를 교류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방이 차가워지지 않는 것같은 논리지.
너와집 체험촌 같은 곳이라 생각하고 여기 저기 들러서 문도 열어보면서 놀란 것은 체험촌이긴 한데 살고 있는 흔적이 그대로 있는 게 이상했지.  다행이 사람은 없었지만 아마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던 것 같아. 뭐 별거 손댄것은 없지만 가마솥아궁이며 시꺼멓게 그슬린 마루바닥이며 벽을 보면서 옛날 시골생활이 생각나더라. 아마도 그 깊은 산골에서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았던 시절에 그렇게 그들의 삶을 살았을 강원도의 사람들을 잠깐 생각했지. 이런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란 서울사람들이야 그냥 좋은 구경, 신기한 체험하고 간다지만 우리들은 그대로 우리 어릴적 삶이었기에 보는 눈이 다르더라.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더니 80년대즈음에 비포장도로 한켠에 나즈막히 서있을법한 교통표지판이나오는거야. '삼척시'라고 말이야. 이제 삼척으로 들어선게지. 우리가 지도를 펴놓고 알고 있는 삼척은 강릉아래 동해아래 바닷가 도시라는 것인데 태백으로 넘어가니 산으로 산으로 둘러쌓인, 바다라고는 생각해볼 수 조차 없는 그런 두메산골이더라.

역사가 우리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우리의 현재 삶들이 모인 것이고, 지금의 삶들이 시간 지나면 바로 역사가 되는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들의 현재의 삶을 비추어볼 수 있고, 다시 미래를 지혜롭게 대처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라고 하지. 그런 것 처럼 강원도 산골의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과거의 삶이고 그대로 역사가 된 듯 한 느낌이야. 현대물질문명의 속도속에서 뒤쳐지고 낙후되었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문명 자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 그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비판정신'말이야. 누구도 입을 떼지 않을때 아닌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힘 - 강원도의 삶을 통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삼척에 도착했으니 안심하도록. 또 다음에 쓸께.
참, 나를 찾아오려면 남부터미널 6번출구로 나와서 길 건너지 말고 쭉 내려오면 카페베네가 있으니 거기서 보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