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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봄 산책길에서 건져올린 생각들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벗꽃핀 경주는 지난 주에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공동체 식구들과 조용히 경주인근의 마을과 계곡, 산과 마을의 길을 따라 24km를 걷고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자연속에서 그 공기를 들이쉬며 시끌했지만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색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해마다 봄은 찾아왔지만 그 봄을 제대로 만났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내 안에 꿈틀대는 생태적 감수성을 다시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꽃을 보고 기뻐하고 감탄하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꽃이 주는 가르침을 얼마만큼 받는가 하는 것은 또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들리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을 지날 때마다 만나는 자연에 마음을 보탰습니다. <에코동의 서재>에서 연재하듯 짧은 감상들을 실었던 것을 모았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심정이고, 봄나들이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느낌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돌아봄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봅니다.


봄길산책(1) 봄의 기적

벗꽃이 눈꽃처럼 날립니다. 개울위에 하얗게 봄소식전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말라버린 갈대숲 사이로 파릇 파릇 순이 오르고 있습니다. 봄의 길을 걷는 것은 기적을 만나는 일입니다. 벗꽃의 절정이 지났다고 해서 벗꽃을 볼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아쉬움을 갖고 왔는데 아직 꽃잎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세상천지가 꽃입니다. 또 푸른 생명도 꽃입니다. 그 생명사이로 걸었습니다. 같이 숨쉬는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봄길산책(2) 봄천지

갈아엎은 논흙에도 생명은 돋아납니다. 흙덩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었던겁니다. 논두렁에는 쑥이 지천입니다. 얼마전 쑥이 올랐나 싶었는데 허옇게 덮인게 외손자 갓 얻어 할아버지된 촌로의 덤성자란 수염같습니다. 푸근합니다. 논두렁길을 따라 걷는 것은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흙을 만나는 기쁨입니다. 흙을 부정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어느 생명운동가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흙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봄길산책(3) 봄의 정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에 물오르는게 확 느껴집니다. 땅밑으로 물흐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멀리, 또 가까이 점들을 가득 찍어놓은 마냥 온갖 꽃들이 산을 물들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신비롭다는 말 밖에 따로 없습니다. 왜 여태 이 풍광을 못보고 살았을까 싶습니다. 게으름 탓이겠지요. 물 오르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 자연의 숨소리입니다. 이러한 자연에 가공의 인공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그러한 것은 제껴두고 찍는 마음의 소리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이 그러한 뜻이겠지요.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봄길산책(4) 봄의 마음

봄이 오면 꽃피는게 당연하다 싶었는데 가만히보니 대부분의 봄꽃이 고목같은 덩걸에 꽃부터 피고 그 꽃떨어지면서 잎이 돋아납니다. 그걸 이제 알았냐 타박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속살이나 드러내듯 부끄러운 꽃잎으로 봄소식 전하고는 바람과 함께 떨어지며 잎을 부릅니다.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은 그 모양은 비슷하나 느낌이 확연히 다릅니다. 어릴때 온 산을 누비며 다니다가 진달래는 참꽃이라 해서 꽃을 따먹기도 했습니다. 풀맛에 새콤한 맛이 있는 정도인데 어릴때는 별 간식거리가 없어서 그랬던지 꽃을 따 먹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철쭉은 개꽃이라해서 먹지도 못했습니다. 진달래의 가지는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그 꽃을 피운 가지는 여립니다.



봄길산책(5) 봄의 평화

산길을 걷다가 넓은 호수를 만납니다. 물은 바람에 출렁이며 고요를 일러줍니다. 바람에 봄빛을 담는 산정호수는 넓은 물을 조용히 이리 저리 보내고 있습니다. 갇혀 있으되 자유롭고 출렁이되 고요합니다. 봄색깔이 저렇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평화를 배웁니다. 물 속에서 가지를 올리고 잎을 틔우는 버드나무도 봄바람이 시원해보입니다.



봄길산책(6) 봄의 공간

굽은 산길 돌고 돌아도 산호수는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물곁을 따라 산길을 걸으며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일부러 시간내지 않으면 봄이 왔어도 봄을 알지 못하고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는다 해도 받지를 못했을겁니다. 중생의 삶이 따로 없습니다. 호수 반을 돌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봄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봄이라고 강조하고 알아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렇게 소리없이 푸른 싹을 틔우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합니다.



봄길산책(7) 봄날 오후

어떤 무덤가에는 개나리가 아직 남아있고 또 어떤 무덤옆에는 진달래가 소담히 피어있습니다. 무덤속에 누운 옛사람들은 햇살 받으며 봄꽃을 만끽하는 맛도 크겠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나은 이승은 어떻게 만들어야하나 걱정입니다. 봄꽃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봄길산책(8) 봄날 계곡

이제 평지길은 끝나고 계곡따라 산길입니다. 발길아래 채이는 돌 살피느라 고개 숙이니 작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덮여 있습니다. 참 예쁘다싶어 꽃이름이 뭔지 열심히 묻지만 아는이 별로 없습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 꽃은 그 자리에 있어왔고 예쁘게 피었습니다. 이름을 알려고 애쓰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데 집중해야겠습니다.



봄길산책(9) 가메들

울산과 경주의 경계든처의 가메들 계곡을 지납니다. 곳곳에 핀 작은 야생화도 야생화지만 시리도록 맑은 물이 딴세상입니다. 깊은 계곡에서 으례 만나는 맑은 물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걷기 시작한지 거의 한시간 남짓, 마을에서는 제법 떨어진 깊은 곳인데 옛날에는 이곳까지 나무하러 왔다고 합니다. 문득 조선후기의 박지원이 자신의 호로 삼았던 연암협곡이 이러했을까하고 망상에 잠겨봅니다.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지만 오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할 뿐입니다



봄길산책(10) 봄의 세월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삶의 지혜를 쌓이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책을 읽어도 젊은 작가가 전하는 지식과 나이가 푹 익은 나이 많은 작가의 경험은 그 폭과 깊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나는 이것을 두고 연륜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 연륜을 쌓아 늙어가는게 소박한 꿈이기도 합니다.
나이들어 자연속에서 마음껏 웃어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세상사에 찌들어 속도와 경쟁속에서 소리내어 웃는 것도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세월을 알게하고 봄은 나이들어 가는 우리를 동심으로 이끌어줍니다.



봄길산책(11) 봄맞이꽃

봄길을 걷다보면 야생화를 많이 만납니다. 하얀 꽃잎의 순수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봄맞이꽃이라 합니다. 바위 옆의 습기없는 척박한 땅에 가만히 미소지으며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겠지요. 봄맞이꽃은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는 살짝 떨군 갓 출가한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맑은 기운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맑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기를 서원해봅니다.
봄맞이 꽃의 겸손도 배워야겠습니다. 수행자의 계율에도 꽃으로 치장하지 말리는 계율과 높은 침상에 앉지 말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꽃이면서 화려하지 않아 치장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맑고 예쁘면서도 알아달라고 아우성하지 않아 높은 침상에 앉아 군림하려는 모습도 없습니다. 그대로 수행자를 닮은 듯 합니다.



봄길산책(12) 봄의 공존

봄이 오는 자리에는 겨울과 함께 있습니다.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자기자리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는 겨울도 고맙고, 푸른 새싹으로 먼저 인사하며 찾아오는 봄도 고맙습니다. 어찌보면 자연에 대해 오만한 사람만이 그리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본래 둘이 아니라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말라버린 갈대숲과 물오른 나무의 새잎들은 겨울이고 봄입니다. 그들은 하나입니다.



봄길산책(13) 봄길 사색

봄의 길은 사색의 시간을 갖게합니다. 비단 봄의 길만 그러하겠냐마는 생명이 움트는 기운 탓에 길위를 걷는 우리들도 그 기운을 받습니다.
아직 겨울 낙엽이 바람에 날리다 산길 모퉁이에 널려있습니다. 그 낙엽들을 살짝 밀어올리며 세상과 마주하는 푸른 생명을 만납니다. 마치 어미닭이 품었던 알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고개를 내밀며 안간힘 쓰듯 합니다. 길에서 생명을 만나고 그 생명의 말없는 에너지는 우리를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합니다.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지요. 아마 차를 타고 달렸다면 느끼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임도에 찾아온 봄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지나온 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설계도 해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는 지금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봄길 사색 



봄길산책(14) 봄의 들판

다시 마을길로 내려왔습니다. 산의 봄은 물오른 나무와 야생의 꽃들이 알려준다면 마을의 봄은 들판의 곡식과 논두렁에 핀 작은 야생화가 일러줍니다.
지금은 시골이나 도시나 집모양도 비슷합니다. 시골전통의 가옥이 유지되는 것이 전통을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라 하면 농촌의 사람들이 대번에 항의하듯 따지겠지요? 누구를 위한 전통가옥이냐고 하면서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편리와 멋이 함께 어울려 디자인된 전통의 마을 집과 어슬프게 시멘트로 지어진 도시집을 흉내내는 것은 그 가치의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쌀과 보리를 이모작했는데 여러가지로 보리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경주의 찰보리빵이 지역특산물로 인기를 얻자 경주 인근에는 보리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맘때는 키가 부쩍 커야 하는데 아직 키가 작습니다. 어릴때는 푸른 보리밭이 폭신할 것 같아 많이 뒹굴었고 꾸지람도 많이 들었지요.  
전통의 문화가 거칠고 버려져야 할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찰보리빵처럼 전통의 문화가 현대로 이어지고 더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보리밭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봄길산책(15) 사람의 봄

차에서 내려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수행자의 기풍이 살아있는 봄맞이 꽃입니다.
마을길에는 사람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제 먹을 것이 있어도 베풀지 않고 배가 불러도 따로 저장하는 인간의 탐욕도 있고, 자기는 배를 곯아도 이웃과 나눠먹는 인간의 자비로움도 느껴집니다. 이런게 버무려져 사람사는 세상이라 하겠지요.
이만큼 떠옮겨 사무실에 두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욕심의 정점이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두고두고 곁에서 보고싶은 애정의 표현이라 얼버무리려 합니다.


24km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발이 아프고, 다리가 붓고, 허리가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봄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내 삶이 깊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봄처럼 말입니다. 봄이 주는 가르침에 귀기울여야겠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깊이 참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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