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네번 째 편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득하더만. 온전한 내 삶의 영역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즈음 어딘가에 너와 한번 쯤 만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은 차라리 가슴이 시리다. 순간 순간의 시간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었건만 기억의 저편에 사라져버린 영상들은 나의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게 되어 버린것 같아 더욱 그렇다.
넌 그때나 지금이나 수더분한 원단아줌마의 목소리는 그대로인지라 어색함은 없더라. 그게 원단아줌마의 수더분함인지 그때의 꿈많고 소극적인 아가씨의 목소리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 틈틈히 네가 보내는 메시지는 시간과 공간의 넓은 공백들을 채우고 이어주는 여유가 되고 텍스트가 되어 흘러다니는 것같다.
언젠가 내가 아는 젊은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이제는 젊은 우리들이 이 문제를 해결나가야 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으로 했는데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라는거야. '왜 교수님과 우리들이 <젊은 우리들>에 함께 포함되어야 하냐?'는 식의 눈을 하고서 말이야. 참 공감되는게, 우리들 나이먹는 생각은 안하고 젊은 학생들을 보면 그냥 우리 또래의 친구같기도 하고 동료같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더 큰 기대로 화를 내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의 텍스트는 나를 포함한 그 모든 시간을 멈추는 것 같고, 나이 들어가는 지금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그 어느쯤에 고정되어 있는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야.
강원도 삼척 : 바람의 계곡
나는 그런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강원도 삼척으로 들어갔지. 나이로 따지면야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분과 열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지만 말이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게 그런 망각의 흔적때문이 아닌가 싶다. 망각은 인간에게 슬픈 현실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삶이 가능하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 생각나는 군.
인간의 물질문명이 자신의 터전마저 무너뜨리고 있을때 청정삶터를 지키는 나오시카의 웅변은 '지금 이대로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 같더만. 강원도의 그 바람의 계곡에도 숲의 정령이 살고 있는것 같았어. 어디를 가도 가만히 그 정령의 메시지를 바람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 같았어.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갔지. 우리나라 깊은 산속에 큰 절이 있는 곳에 맑은 계곡이 있는 마냥 맑은 물을 담고 흐르는 계곡은 별반 차이는 없었어. 맑은 물에 새롭게 탄성을 지르는 사이로 그 계곡의 물소리도 끊이지 않고 흐른다. 엊그제 내린 비때문에 계곡 물이 불었다고 하지만 넘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한여름에는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을텐데 여기 앉을까, 저기 앉을까, 아냐 더 올라가면 여기와는 다른 무릉도원이 나올거야 하며 자리를 고르는 것도 인간의 욕심이 드러낸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리해봐야 우리가 앉는 자리는 고작 몇평 되지도 않을 것을 고르고 골라 앉는다. 그래봐야 푸른 곳을 찾아헤매도 흙은 항상 보이는 잔디밭의 흙처럼 우리가 골라 앉은 곳도 무릉도원이 아닌 평범한 자리였던 것 같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앉느냐에 따라 무릉도원이 되기도 하고, 그냥 물가 자갈밭이 되기도 하겠지.
한여름이 아니라서 그런지 계곡을 찾아온 사람은 우리일행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소리만 있다. 수박도 잘라먹고, 계곡에 발도 담가보고 물소릴 이길 요량으로 재잘재잘 떠들어보기도 하지만 바위에 부딪치며 계속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이길 재간이없다.
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때 먹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우리가 먹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또 뒤에 전할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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