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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다

해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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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붓을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법륜스님의 새벽말씀이 생각나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발우그릇을 펴고 앉아 공양을 마친 후 하신 말씀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챙기는 시간은 들뜬 시간이 아니라 가라앉히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수행의 시간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공동체 식구들이 모여앉아 소심경을 외며 발우공양을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소심경의 경전내용을 가슴에 새기며 밥을 먹으면서도 재발심의 계기로 삼는 것이 수행의 과정이기에 단순히 밥먹는 행위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바가지의 물은 극한상황이고
구정선사의 아홉번 째 솥은 극한 분별심입니다.
극한상황에서 한 마음 돌이킬때
해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물을 찾았을때 어제 밤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의 물이었음을 알고 토했던 것은 마지막 극한 상황에 처한 것이라는거죠. 분명 어제 밤에 어두운 곳에서 더듬어 찾아 마신 물은 꿀맛이었는데, 아침에 다시 해골바가지를 보고는 어제의 꿀맛은 사라지고 지금의 극한 상황을 알게 됩니다. 그 꿀맛이 어디있었던가 하는 것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 극한상황에서의 한 마음 돌이키는 것입니다.

구정선사가 스승의 지시에 따라 솥을 걸면서 정성을 다해 걸어도 '아니다'하고는 발로 뭉개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솥을 걸어도 역시 스승은 '아니다'하고 바로 뭉개고, 그렇게 아홉 번째의 자기 분별심을 만나게 되는거죠. 나는 몇 번째까지 갔을까 싶습니다. 그 아홉번의 극한 분별심의 상황을 맞닥뜨려 한 마음 돌이켜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극한 분별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 돌이켜 해탈을 얻을 수 있었던거죠.

평소에 편안한 생활가운데서 잘 하는 것은 수행의 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위와 같이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 도저히 '이건 아니다'싶을때 자기의 한 마음을 돌이키는 것, 또 돌이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수행의 완성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쉽지 않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