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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다

[리뷰] 하산하던 날이었다


 


[리뷰] 하산하던 날이었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을 누비고 있는 이해일박사가 <행복한 책방>을 찾았습니다. 대뜸 4월 1일에 미니갤러리 사진전 오프닝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 소감을 글로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산이 좋아, 나무가 좋아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일터로 삼아 산을 누비고 있는 그는, 또 그림과 사진, 음악 등 예술적 감수성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더욱 떼를 쓰듯 요청했는지 모릅니다. 아래 글은 이해일박사가 보내온 <자작나무 숲>展에 부쳐온 리뷰입니다.


하산하던 날이었다.
지난밤 그칠 것으로 예고됐던 봄눈이
다시 세차게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군데군데 잔설을 땟자국처럼 걸친 산야는
어느새 설산의 화려함으로 변모한다. 

감탄도 잠시, 맞바람치는 눈발에
안경너머로는 발길만 겨우 들어선다. 
답답한 시야는
백담탐방안내소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배낭을 부리기 무섭게
카메라를 들고
백담사 옆 너른 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의 중심에서 바라본 산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창공과 대지에 가득한 눈발에
세상은 저 멀리 희미해지고
천지간은 낯선 새로움으로 가득하였다.

익숙한 것은 또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
‘천지간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사실 그 역설의 강렬한 표현일 것이다.

여기 <자작나무 숲>에서
굳이 자작나무를 찾을 필요는 없겠다.
여명이 깃드는 이른 아침,
채 깨어나지 않은 자작나무는
어둠속에서도 고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화성을 흐르는 듯한
이 냇가의 풍경이 나는 놀랍기만 하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듯,
초현실주의나 극사실주의의 작품에서 느낄 법한
이 낯선 새로움에 
새삼‘익숙한 것들’을 묻게 된다. 
익숙한 것, 익숙한 관계, 익숙한 사람들…
우리 도처에 흔하고 흔한
그래서 그렇게 뻔하게 살고 있는
나는 또 뭔가? 하고 말이다.

어느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냇가를 담은
이 사진 <자작나무 숲>을 보며
‘새롭게 본다’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익숙해져 덤덤해진
그래서 삶이 무료한 우리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우리는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굳어진 머리와 삐딱해진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고,
심지어 자신마저도 그렇게 대하며 말이다.

이해일(박사,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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