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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스님에게 배우는 배려의 대화법 "그럴 수 있겠구나!"

어떤 사람이 내 가사 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조그마한 일에 화를 내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하는 이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이 내게서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을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 때문에 격정을 품지 않고 화를 내는 일도 없으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지 않고 도심道心이 견고해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다면, 그는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나 또한 그의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법을 보는 자이고, 법을 보는 자는 곧 나를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한 대목 한 대목 곱씹으면서 아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본래 법문을 하셨던 것을 모아 둔 것이라 연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법문이 독립적이다. 나는 가능하다면 (처음 시작의 마음은 정말 그러하지만...) 각각의 법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고 싶다.

위의 글은 <부처님 옷자락을 붙잡아도>라는 제목의 법문이다. 머리 깍고 먹물옷을 입었다고 해서 출가 수행자라 할 수 있는가? 또 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동참한다고 해서 재가신도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것이 진정한 불자이고 부처님 가르침인지 오늘 같은 날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 뜻을 전하기 위해서 인용하신 붓다의 말씀이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지 껍질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형식과 절차 등 외형의 문제도 있어야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일테다.

나는 요즘 실제로 어떠한가? 라는 의문을 종종 떠올린다. 며칠전에 지인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있었던 일이다.
“아유~ 아이가 엄마를 쏙 빼닮았네요!”
“그래요? 이목구비는 아빠를 더 닮았는데~”

이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영국의 어떤 연구자가 오랜시간 연구를 한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종종 ‘부부가 닮았다’, ‘아이가 부모를 닮았다’등의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런데 이 연구실험은 ‘A 어린이가 B의 자녀이다’라는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대면하게 되면, 실제와 아무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A가 B를 닮았다’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A가 B의 자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에 의존해서 ‘닮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는 어떠한가? 라는 물음에 가볍게 답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철학적 문제라고 넘길 문제도 아니다. 우리들은 ‘내가 직접 보았다’라는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있다.

그럼 위 경전에서 붓다가 이야기하는 ‘나와 함께 있는 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몸이 함께 있다고 해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연인이라고 해서 함께 하는 절대적 시간만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발행된 <인간붓다>에서도 ‘진리를 보는 자는 부처를 보리라’라는 소제목의 내용에도 붓다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박칼리라는 제자의 임종을 앞두고 붓다를 뵙고자 요청하자 지체없이 달려온다. 제자는 부처님이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송구스러워 이제는 부처님을 뵈었으니 곧 죽을지라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통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은 나빠지기만 할 뿐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세존을 뵙고 세존의 발밑에 예배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이 몸으로는 도저히 나아갈 수 가 없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임종의 순간에 스승을 찾은 박칼리의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 손을 꼭 잡아주면서 위로를 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히려 단호한 목소리로 박칼리를 꾸짖습니다.

“박칼리여, 그대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결국에는 썩어서 무드러질 이 늙어빠진 육신을 보려고 나를 찾았더냐. 박칼리여,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하느니라. 진리의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보는 것이며, 부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것이니라.”

붓다의 이야기를 빌어 ‘어떤 것이 진리인가?’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내가 보고 믿고 있는 것이 ‘정말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상대방의 의견과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이 필요할 것이다. 경청하고 배려하면서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내 생각에 비추어 도무지 이해못할 이야기를 들어도 옳고 그름을 넘어 그 사람의 입장에 되어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이 말은 그동안의 내 삶을 반성하고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종교를 넘어, 시대를 넘어 내 삶을 풍성하게 하고 성찰하기위한 도구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이 글은 2010.03.23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