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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야생초편지




야생초 편지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그 후 13년 2개월을 유학생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장기수로 복역했던 황대권 선생님은 지금 ‘풀이라는 것은 쓸모 없거나 뽑아버려야 할 잡초가 아니라 나름의 존재 가치를 가진 야생초’라고 항변하면서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자유를 갈구하는 장기수들에게 쇠창살 너머 파란 하늘은 ‘감옥문학의 변함없는 주제’라는 것에 뜻을 같이 하지만 ‘야생초편지’가 ‘감옥문학’으로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이미 아닐 것이다.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이 읽혀지고 있는 책을 굳이 다시 소개한다는 것은 사족이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생태공동체운동센터를 준비하면서부터 황대권 선생님을 옆에서 찬찬히 살펴보면서 느끼는 것이 참 많다. ‘야생초 편지’는 단순히 ‘풀에 대한 관찰일기’가 아니다. 세밀하게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만 사진보다는 덜 하고, 더 많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도감보다는 내용이 부실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식물도감’을 읽기보다 ‘야생초편지’에 집중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는 당신의 ‘삶의 때’가 잔뜩 묻어있기 때문이다.

간첩으로 몰린 데 대한 분노, 지옥과 같았을 고문과 징벌방 생활을 겪은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지친 영혼과 망가진 몸뿐이었을 것이다. 만성기관지염을 자연요법으로 치료하면서 교도소 담장 곳곳에 난 야생초를 먹기 시작하면서 야생초의 벗이 되어버린 황대권선생님. 불교경전의 보왕삼매론에는 「억울함을 당해도 밝히려고 하지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작은 억울함마저 밝히지 못하고 오해가 있을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과 분노가 있기 마련인데 긴 세월 징역을 보내는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육체적 고통과 아픔보다는 억울함에 대한 분노로 파괴되는 영혼이 더 큰 고통이었을텐데 가톨릭신자로서 투사에서 징역생활을 즐기는 생태주의자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도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련히 떠 오르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학교 다녀오면 곧장 소를 몰고 강가로 나가 풀어놓고는 자연을 벗삼아 계절을 만지고 놀았다. 방학만 되면 하루종일 강에서 놀았다. 여름에는 미역감고 놀고, 겨울이면 얼음타고 놀던 기억은 지금도 내 인생의 큰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나마 이것도 세월이 많이 흘러서야 내 안에 숨쉬고 있는 그런 생태적 감수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 풀 무더기를 한 평만 떼어다 교도소 운동장으로 옮겨 놓을 수만 있다면…’ 야생초 편지에 사용된 모든 언어들이 편지글이라 허투루 쓴 말은 없겠지만 ‘간절함’이 묻어나온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것은 그가 야생초에 대한 애정이 자라기 시작한 배경을 설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지 풍부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부족하고 아쉬우면 간절해지는 이치인 것 같다.

나는 도회지로 떠나온 뒤로 농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마저 없었다. 고된 노동과 힘듬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올 초부터 가까운 텃밭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잘 알아서 시작했다기 보다 놀고 있는 땅에 뭔가 심어서 얻으려고 하는 욕심에서였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올때까지 기다려지는 간절함과 싹이 고개를 내밀 때 기쁨과 두근거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그 뒤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흙을 대하는 마음을 새로이 읽을 수 있었다. 작은 풀 한 포기에서 피워내는 꽃과 잎을 보면서도 기뻐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혹시 누가 밟기라도 할까봐 돌을 주워다가 담장을 쳐주기도 하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소유하고 ‘나’의 영역에 대한 고집이 될까봐 조심스레 돌아보면서도 다시 찾은 그 기쁨을 ‘야생초 편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황대권선생님은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만(慢)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고 했다..

이 선생님이라는 분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심어놓은 야채외에는 모두 뽑아버리는 이선생님의 재배법과 달리 야생초 한 포기, 한 포기에도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씀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잡초는 없다’라는 말이 평소에 귀언저리에 맴돌아 텃밭농사를 하면서도 채소외에 눈에 띄는 많은 풀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격한 감정을 발견하고는 했는데 ‘야생초 편지’를 통해 부끄러움을 알게되었다.

‘야생초 편지’는 풀 한 포기에 대한 세밀한 안내를 넘어 한 포기, 한 포기를 대하면서 써 내려간 맑은 영혼을 볼 수 있다. 야생초 한 포기에 대한 전문적 식견보다는 그 한 포기를 통해서 세상을 꾸짖는 소리에 집중해 본다. 생물종다양성과 세계화에 대한 문제,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것 등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은 감옥밖의 사람보다 시야가 넓다. 그의 간절함은 야생초 너머 보이는 생태위기시대의 ‘생태적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자연과 공생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깨달음’은 생태위기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이 글은 2009.06.10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