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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기적의 사과>는 한편의 영화보는 듯한 책



 
<기적의 사과>는 한편의 영화보는 듯한 책



썩지않는 사과를 키우는 농장
어느날 화장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책광고 <기적의 사과>에 시선이 머물렀다. 뭐 대단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도대체 ‘기적’과 ‘사과’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눈물나게 맛있는 사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환호하는 사과, 심까지 먹어 버리게 되는,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세계 최초로 썩지 않는 사과를 생산해 온 세상을 뒤흔든 감동 휴먼스토리!’ 아니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책광고를 하고 있다. 무슨 썩지 않는 사과가 다 있어? 그런데 정말 그런게 있어? 하는 궁금함과 더불어 무슨 콩트이야기모음집인가? 하는 생각도 살짝 하고 화장실을 나오면서 모두 잊었다.

어느날 누군가로부터 이 책을 전해받는 순간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그 책이다. 그런데 표지가 무슨 연구서적도 아니것이, 별로 땡기지 않는 표지였지만 그 안의 꼼꼼한 편집들과 사이사이 들어있는 일본냄새가 나는 일러스트는 표지와 사뭇다르게 책속으로 손을 잡아 끌었다.

이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의 이야기다. 이 분이 직접 쓴 글은 아니지만 이 분을 소개하는 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1949년 아오모리 현 이와키마치에서 대대로 사과 재배를 해 온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히로사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히타치 계열의 제조회사에 취직하지만 1년 반 만에 귀향하여 1978년부터 사과재배를 시작한다. 생명농법의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을 사과 재배에 실천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도전의 대가는 혹독했다. 밤낮으로 들끓는 해충과 씨름하고, 누렇게 말라죽어가는 사과나무를 돌보아야 했다. 가난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나무만 보고 흙은 보지 못했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어,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완성한다. 10여 년간 사과나무는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야생의 힘을 스스로 회복하여, 현대문명의 발달 이래 존재하지 않았던 지금껏 인류가 먹어 보지 못한 야생의 사과를 선물했다. 그의 기적의 사과는 2006년 12월 일본 NHK의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에 소개되었고, ‘단 한 번만이라도 기무라씨의 사과를 먹어보고 싶어요’, ‘기무라씨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요’와 같은 사연이 담긴 7백여 통의 편지가 방송국으로 폭주했다. 온라인 판매에서 3분 만에 품절되는 사과, 이를 재료로 만든 수프를 먹으려면 1년간 기다려야 하는 ‘기적의 사과’를 키우는 그는, 여전히 소박한 시골 생활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연농법을 알리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 가지에 미치면 반드시 답을 찾는다
사과재배의 역사속에서 농약사용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켜온 사실을 들며 사과농사를 짓는 모든 사람이 농약사용하지 않는 사과를 상상할 수 없었다. 기무라 아키노리 씨는 어려서는 장난감을 학교를 다니면서는 라디오를 비롯한 온갖 전자제품까지 분해하고 구조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높았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집중력과 탐구정신이 농약사용하지 않는 사과재배 성공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기무라 아키노리 씨가 방송에 나간 뒤 모든 것을 비관하여 자살을 결심했던 사람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죽을려는 마음으로 바보가 되어 살아라.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우리의 인생에서 바보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
농약에 예민한 안내 때문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던 끝에 함께 도서관을 찾는다. 정말이지 우연으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이라는 책을 통해 기무라 아키노리 씨는 탐구를 시작한다. 자연은 그 자체가 완결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은 강했다. 사과농사를 짓는 동안 연간 13회의 농약을 사용하는데 화학비료와 농약을 끊고 새로운 도전과 실험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것이다.

고목숲을 푸른 사과 밭으로
사과밭은 벌레들의 천국이 되어 잎이 일찍 떨어지고 병이 들고 나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기무라 아키노리 씨는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농약을 대신할 음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온갖 것을 재료로 사용해본다. 쉽지 않다.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해도 정확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 사과나무는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가세는 기울어지고 온 가족의 분위기도 침울해 지지만 누구 하나도 원망하지 않는 분위기다. 가족의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지의 메시지는 그 자체가 버팀목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에너지원일 것이다.

어렴풋한 희망에 매달린 나날
애당초 확신같은 것은 없었고 서서히 사과나무는 말라죽어가면서 농약을 다시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생길정도다. 농약을 안쓰고 사과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예감으로 실험은 계속된다. 파산자라는 별명으로 주위 친척들에게도 빚을 졌고, 보험료를 낼 돈이 없고, 수도세와 전기세도 돈이 없어 아주 필요한 부분만 사용하면서 절약하며 살았다. 친구들은 가족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충고하기에도 지쳤다.

몽유병환자처럼 한 밤중에 창고에 나가 사과상자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주위에서는 ‘정신이 나갔다’는 말로 비아냥거리지만 가족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희망을 자신들의 희망으로 만들며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떠했을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선택을 했을때의 절망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사과나무에게 말을 건네다
사과나무는 점점 약해지고, 이내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아서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돌며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하는 기무라 아키노리 씨.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을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주세요”라고 사과나무에게 애원하듯 말을 건넨것이 무농약실험 6년째 접어들고 있던 때였다.

30대 남자의 편안한 얼굴을 노인 같은 험악한 표정으로 바뀌어버린 기무라 씨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서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높이 올라간 그 곳에서 숲속 나무에게는 농약이 필요없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 곳에는 누군가가 농약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잎이 윤택하고 풀숲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깨달음으로 이어간다. 기무라 씨에게 사과나무는 화두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봐라
그동안 잎을 보고, 꽃을 기다렸고, 그러는 과정에서 식초를 뿌려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지만 정작 뿌리를 보지는 못했다는 것을 안다. 흙의 상태도 너무 달랐다. 그동안 잡초는 무조건 사과나무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깎았던 것이 더 약해졌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농약만능주의 시대에 농약을 안 쓰고 사과를 재배하려 하다니, 갈릴레이 시대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하는 것에 필적할는 폭거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너무도 많은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 사과나무, 인간의 합작품
1991년 가을, 태풍이 아오모리 현을 휩쓸어 사과 농가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다. 사과가 거의 다 떨어졌을 뿐 아니라, 사과나무까지 바람에 넘어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기무라 씨의 밭 피해는 아주 가벼웠다. 80%이상의 열매가 가지에 남았던 것이다.

9년만에 사과 꽃이 다시 만개하고 열매를 맺었지만 처음부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너무 작고 볼품없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했다. 이제 서서히 기무라 씨에게 박수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시기다.

기무라 아키노리의 마음들 (본문중에서 가려서 옮겨봅니다.)

자연 속에는 해충도 익충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모든 생명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자연은 만들어진다. 기무라씨는 그런 자연 전체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동안이나 꽃을 피우지 않던 사과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이 감동하면 말도 표정도 잃어버리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못 하고, 그 자리에 목 박힌 듯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모두들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내가 아니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인간이 제아무리 애를 써본들 자기 힘으로는 사과 꽃 하나 못 피워.

세상이 받아 주느냐 안 받아 주느냐는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세상이 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자연을 나누고 분해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연 과학, 즉 학자의 방법론이라면, 기무라 씨는 자기가 하는 일은 정반대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자연은 따로 떼어 낼 수 없다. 그것은 기무라 씨가 숲 속 도토리나무 밑동에서 깨달은 소중한 진리였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없어. 그렇잖아, 인간 자체가 자연의 산물인걸. 인간이 진심으로 자신을 자연의 조력자로 생각하느냐 않느냐, 난 인간의 미래가 거기 달렸다고 생각해. 절대 과장된 말도 빈말도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정도뿐이야.


기무라 아키노리 씨의 이름은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을 정립하였고, 오랜 기다림의 철학으로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렸다. 더 나아가 자신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랑스럽고 가슴벅찬 감동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림처럼 그려지고 이어지고 기무라 씨와 그의 가족들의 얼굴빛까지 그려지고 사과나무에 흐르는 온기마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사과를 대충 먹을 수 있을까싶다. 책을 읽기 전에 이러한 사과를 맛보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고쳐먹고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글은 2009.08.04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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