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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오래된 마을 : 어린시절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오래된 추억너머

이제 막 봄을 저만치 보내고 손에 손수건을 쥐고 땀을 닦고 있다. 어린 시절을 두메산골에서 보낸 나에게는 <고향>이라는 말 속에는 아련히 그려지는 그림들이 몇 가지 있다.

방학이 시작되면 첫날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고 방학동안 어떻게 지낼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활계획표를 먼저 그린다. 그리고는 계획표대로 지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김없이 그랬던 것 같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방학내내 물가에서 지냈던 거다. 아침햇살이 뜨거울때면 발가벗고 물에 풍덩풍덩 들어가고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돌 위에 몸을 이리 저리 굽기도 하고, 점심먹고는 한 숨자고 일어나 해떨어지기 전까지 또 물에서 풍덩풍덩하던거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더 어렸을때는 형에게 덤비다가 맞아서는 강가에서 서럽게 울다가 엄마손에 이끌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시골장에 돌아다니다가 옷 한 벌 얻어 입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고기잡는다고 그릇위에 비닐에 구멍뚫어 고무줄로 덮어서는 안에 된장발라 흐르는 물속에 걸쳐두면 2-30분에 한 그릇이 가득 들었다. 제법 컸다. 왼손 손바닥을 보면서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으로 왼손 손목을 잡으면서 크기를 이야기해줄 정도로 큰 물고기들이 가득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강가에 소를 몰아 놓으면 알아서 풀을 뜯어먹었다. 소먹이러 다니는 이야기를 하면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몇 있다. 소 먹이러 다닌다고 소를 잡고 내내 지켜보는 것은 아니다. 강가에 풀어 놓으면 알아서들 먹는다. 소먹이러 다닐때는 친구가 중요하다. 그런데 동네가 작아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한 명 있었는데 함께 소먹이러 다녔다.
소를 풀어놓고 강가에 대나무밭에 오솔길을 내고 안쪽에 대나무 몇그루 잘라내고는 두어 명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아지터다. 사과서리를 해서는 여기서 사과를 먹었는데 사과밭 주인이 우리동네까지 와서 말을 흘리고 갔다. 사과서리 하다가 한 번 걸리기만 걸리면 그동안 없어진 사과값을 모두 물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겁을 먹고는 그동안 소먹이러 다니던 다리 아래쪽으로 당분간 가지를 못했다. 함께 소 먹이러 다니던 그 친구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죽었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졸업할 때 18명이 졸업했다. 간혹 도회지로 전학가는 인원을 빼고 남은 인원이다. 이 사람들이 6년간 같은 반에 다니는 것이다. 동네는 틀려도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모두 농사를 지었지만 나는 농사를 잘 모른다. 간혹 지금 시골길을 걸으면서 농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우리 형제들이 듣는다면 웃을 일이다. ‘네가 무슨 농사일을 해 봤냐?’할 거다. 그래도 지금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낫질도 잘하고 괭이질도 잘한다. 이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어린나이지만 열 살이 넘어면서 학교에 토끼를 키우기로 했다. 서너마리에서 시작된 토끼는 번식률이 높아 대번에 토끼 사육장을 가득 메웠다. 토끼가 먹을 풀을 베어오는 것이 토끼당번이 할 일이다. 시골학교에 인원이 적다보니 4학년과 5학년이 모두 토끼당번이다. 이때 낫으로 풀베는 것을 배웠다.

6학년이 되어서는 염소를 사육했는데 아침에 등교하면 염소를 학교 뒤 강가에 매어두고 수업마치면 다른 친구들은 교실청소를 하지만 염소당번들은 염소 사육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 풀을 깔아두고 매우 둔 염소를 사육장 안으로 몰고 오는게 일이었다. 방학때도 염소 때문에 염소당번들은 돌아가면서 학교에 갔다. 학생수가 적다보니 지금 기억으로 약 5일에 한 번씩은 학교에 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겨울에는 난로 석탄대신 땔감으로 솔방울 주우러 산에 간 일, 난로위에 도시락 올려서 데워먹던 일 등이다.

나는 어릴때는 고무신을 주로 신고 다녔다. 양말은 겨울에 신는 것이었고, 여름에는 고무신 위 발등이 새까맣게 탔다. 그러니 신발을 벗으면 발가락은 하얗고, 발등위에 고무신 모양따라 동그랗게 타 있었는데 그때 생각에는 원래 발은 그렇게 생긴줄로만 알았다.

이런 어린시절의 이야기들이 파편처럼 떠 다니면서도 싫지 않은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추억이 되었기 때문일거다. 어릴때는 그게 뭔지 몰랐고,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빨리 여기 농촌 시골을 떠나는게 꿈이었다. 그렇게 출세하는게 꿈이었다. 지금은 그런 시골을 떠나와 살고 있지만 늘 마음은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왜 일까?


김용택 산문집 - 오래된 미래

김용택 시인의 <오래된 마을>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꿈을 대리만족시켜주고 있다. <1부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난다>에는 꽃을 주제로 이야기가 많다.

매화꽃 피면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매화더러 피지 말라고 했지요
그냥, 지금처럼
피우려고만 하라고요

며칠 전 섬진강 하동 부근에 사는 어떤 여인의 편지를 받고 써본 시 <그리움>입니다. 꽃이 피어버리면 내 님이 오셨다가 쉬 가버리니,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보내게 해달라는 연인의 노랩니다. - 본문중에서

봄을 가만히 느껴보면서 이리도 꽃을 보고 환장했던 적 있던가 싶다. 그냥 달력넘기며 세월만 죽이는가 싶었는데 내게도 이런 어릴적 감수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 봄꽃이 매화가 피고 산수유꽃이 피고 진달래 피고 물싸리꽃, 벚꽃, 배꽃, 사과꽃 순으로 피는 것을 모르고 그냥 봄에는 꽃이 피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봄을 보내곤 했었다.

강 언덕 푸른 강물과 흰 모래 깔린 강변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 꽃, 꽃, 꽃, 이 환장한 봄날의 매화꽃. 바람이라도 불어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흰 꽃 이파리들을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어찌 환장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홀로 저 꽃들을 다 견디어 낸단 말입니까.

학교회비를 내지 않아 먼 길을 다시 돌아와 회비를 마련해 간 이야기는 40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공감할 이야기일게다. 집이 넉넉해 이런 어려움 겪어보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누구도 이 이야기 들으면서 회비마련하느라 아등바등 했을 어머니의 분주함과 마음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다.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난다>의 글에서는 김용택시인이 농촌에서 살긴 살지만 농사짓는 사람이 아닐진데 농사일을 제대로 알기는 아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섬세하게 이웃농부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그려내고 있다.

<아내>의 가슴 먹먹한 따뜻한 행동들을 보면 참 남자들은 철들때가 아직 멀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런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그리 다른것도 없기 때문에 감히 말한다.

<두 할머니>의 긴 여백이 있는 대화는 답답함이 아니라 여유라는 느낌마저 든다. 글이 그래 써여져서 그런게 아니라 그 사이 전해오는 느낌이 그렇다는거다. 요즘처럼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인터넷이나 메일을 통해서 금방 금방 대답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두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가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이다.

<2부 봄날은 간다>에서는 이웃집 사람들과의 삶,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이 만나는 글들이다. <지렁이 울음소리>에서는 욕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삶이 부럽다. <왼손과 오른손>에는 좌파 우파 등으로 나눠 싸우는 시대의 아픔도 이야기했다.

오동꽃은 보라색이네
이 마을 저 마을 없는 데가 없네
나는 오동꽃을 처음 알았네

이런 시를 쓰는 아이의 마음들을 읽으며 시골에서 선생님으로,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몇몇은 부러울 수도 있을게다.

우리들에게 부러운것들은

도시가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우리들은 발전이라는 이름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도 토목공사를 대대적으로 벌려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계획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는 옛날의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가 되고 있다.

산에서 어떤 새가 어떻게 울고, 들에는 어떤 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면서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쳐다도 보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제대로 가고 있을까 두려움마저 든다. 모두가 가는 갈이라 함께 휩쓸려 달려가고 있지만 거기가 벼랑끝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길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것도 뒤질세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오늘 김용택의 <오래된 마을>을 덮으며 지난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 내가 선 자리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일 내 디딜 발걸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편으로는 그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불러보고 아버지를 안아드리면서 수고하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은 2009.06.19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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