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다

[책리뷰] 아버지의 편지


잔소리 많은 아버지, 늙어서 외롭다



선비들의 정을 볼 수 있는 기대작 <아버지의 편지>

“인생이 얼마나 되겠느냐, 젊은 시절은 머물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육성을 편지로 읽다!

조선 최고의 명사들이 자식에게만 전했던 삶의 지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사들이 편지로 전한 자식교육의 노하우!

이황, 백광훈, 유성룡, 이식, 박세당, 안정복, 강세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 학자, 관료, 문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던 조선 선비들이 ‘아들’에게 쓴 편지!

책 표지에 쓰여있는 말들이다. 옛 아버지의 편지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이다. 모두 한 시대에 빛났던 쟁쟁한 학자요 문인이요 예술가들이다. 자식을 다잡아 향상시키려는 아버지의 쉴새없는 다그침에서 우리는 근엄한 선비 아닌 맨 얼굴의 아버지와 만난다.

흉년이 들어 곳곳이 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우리 집의 환곡 갚기도 부족하여 거듭 욕을 당할까 염려되는구나. 생각이 이에 미치니 밥이 목구멍을 내려가지 않는다.
(백광훈이 아들 형남과 진남에게 부친 편지 p.56)


아버지 - 자식들에게 한(恨)을 물려주고
시대를 지나오면서 ‘아버지’의 상은 조금씩 변해오면서도 그 근본은 또 닮아있는것 같다. 5-60년대를 지나 온 아버지들은 어떤가?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전후의 어려운 세대의 공통적 특징들이 열심히 일하는것 외에도 ‘노름, 술, 바람, 폭력’으로 얼룩져 자식들에게 한(恨)을 심어주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찌 그리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비슷한지 적잖이 놀랐다. 그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뿐 실상은 아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술과 폭력으로 기억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 ‘아버지’의 자식들은 지금 그 때의 아버지 나이를 지나고 있다.

다시 시대를 흘러 아버지의 나이를 살고 있는 지금의 아버지는 어떠한가? 세상의 변화속에 자식들의 공부를 핑계로 돈벌어 조용히 학비를 대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 것 마냥 한없이 왜소해진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면 과거의 아버지와는 달리 맥없는 아버지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도대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또 자식들의 삶을 어떻게 안내하고 있단 말인가?

네가 지금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가서 한번 가면 뒤쫓기가 어렵다. 끝내 농부나 병졸이 되어 일생을 보내려 한단 말이냐? 천번 만번 마음에 새겨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황이 아들 준에게 보낸 답장 p.22)

오늘날 과거 시험을 보는 사람을 살펴보니, 대충 노는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구나, 너희가 만약 과거에 생각이 없지 않다면, 단지 장막을 내리고 반딧불이를 모아서 밤낮없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백광훈이 아들 형남에게 부친 편지 p.47)

오늘날 재주 있는 선비들은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고상한 운치로 여기나 참으로 어리석다 하겠다. 시험을 볼 것 같으면 감히 한가롭게 노닥거리 못하고, 대략이라도 d hldnrp 마련이니, 보탬이 적지 않다. 혹 다행히 합격하는 수도 있다.
(이식이 아들 면하에게 부친 편지 p.115)

과거 날짜가 멀지 않았다.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할텐데, 아픈 사람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겠느냐? 다만 글을 지을때는 반드시 생경하고 궁벽한 병통을 없애야만 한다.
(박세당이 아들 태보에게 부친편지 p.135)

조선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에 대한 불만과 실망
책을 중간 즈음 읽다가 짜증이 올라온다. 무슨 고상한 선비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을려니 하는 마음과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인자함이 배어 나오는 선비정신을 보고싶어서 책을 열었지, 내내 자식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잔소리 담긴 편지글을 읽기 위함은 솔직히 아니었다. 그런 실망이 짜증으로 올라 온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비들이 결국 자식문제에서는 여염집 아낙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네 첫 번째 편지에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미목이 밝고 수려하다 하고, 두 번째 편지에서는 점점 충실해져 사람 꼴을 제법 갖추었다고 했더구나. 종간의 편지에도 골상이 비범하다고 했다. 대저 이마는 넓고 솟았으며 정수리는 평평하고 둥근지, 어째서 하나하나 적어 보이지 않는 게냐? 답답하구나. (중략)
전후해서 보낸 소고기볶음은 잘 받아서 아침저녁 찬거리로 했느냐? 어째서 한 번도 좋다는 뜻을 보여주지 않느냐? 답답하고 답답하구나. 나는 육포나 장조림 등의 반찬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추장도 내가 손수 만든 것이니, 맛이 어떤지 자세히 알려다오. 두 물건은 인편에 따라 계속해서 보낼 생각이다.
(연암이 안의에서 종의에게 보낸 편지 p.206~207)

물론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마치 그림보듯 구경한다는 재미도 있고, 아들을 걱정하는 아비의 염려스러운 마음에 윽박도 지르고, 엄살도 부리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만나기도 한다.

대학입시와 과거준비 - 부모님이 더 노심초사
오늘날 부모들이 자식의 대학 입시에 목을 매듯, 그때는 그때 방식대로 과거 시험 준비하는 자식에 대한 노심초사가 그치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어라,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 그저 읽기만 해서는 안된다, 주문과 요구가 끝이 없다.

공부의 방법을 알려주던, 준엄하게 나무라던 아들에 대한 걱정뿐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이 곤궁하고 어려운 시기가 있는가 하면, 공부에 전념하지 않는 아들의 태도도 문제이겠지만 그렇게 다그치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날마다 웃는 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한 에세이다. 가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상호관계작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  아이들의 심성은 태어나서 3년동안 형성되기 때문에 어머니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  아버지를 미워하는 어머니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울 수 없다.
▶  어릴때는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하고, 사춘기가 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  성인이 되면 그들의 인생을 인정하고 간섭해서는 안된다.

<날마다 웃는 집>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부부의 믿음, 가족전체의 마음가짐, 엄마의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담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글들을 통해서 행복의 중심에는 분명 <가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가정생활이 옛날, 특히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을 것이다. 차이는 있되 그 중심에 <가족>에 대한 마음씀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아버지의 권위로 아들이 싫어할 정도의 잔소리를 했을 법 하다. (그 아버지의 권위속에는 자식에 대한 무한사랑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인정한다)

잔소리 심한 아버지, 늙어서 외로워진다.
잔소리가 심한 아버지, 즉 권위적인 아버지는 과묵하고 엄하다. 이런경우 자녀들이 어릴때는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나이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외지에 살다가 명절때나 가끔 집에 오면 아버지에게는 인사만 드리고 엄마에게 가서 논다. 엄마가 그만큼 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잘 놀다가도 아버지가 들어오면 하나 둘씩 빠져서 모두 나가버린다. 그래서 잔소리가 심한 아버지는 늙어서는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그리했다. 잔소리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과묵하고 우리들에게는 참 어려운 존재였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 과자사주세요~"하며 쉽게 다가가는데 나는 그게 어려웠다. 중학교때인가 어느날 나도 힘을 내서 시도해봤다. "아버지, 과자 사주세요~" 했더니 아버지는 과묵한 그 표정으로 "집에 가서 밥먹으면 되지, 과자는 무슨 과자?"하며 딱잘라 거절할때, 참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도 그리하지 않았을까?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권한을 넘어 아버지의 다정다감하고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을 이야기하기전에 그 외로웠을 당신들의 모습을 다시금 떠 올려본다.

※ 이 글은 2009년 10월 24일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

에코동이 추천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