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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기도와 수행


(이 글은 2010.12.15에 포스팅한 리뷰입니다.)

 

최근 불교관련 서적이거나 스님이 쓴 책이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소설 무소유>, <기도-내려놓기> <붓다브레인> <스님의 주례사> <번뇌리셋> <선방일기>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일반적인 관심을 끌고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무소유>는 지난 4월 출간이후 10만부를 넘어섰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마음이야기를 다룬 <스님의 주례사>도 지난 9월 출간이후 10만부를 넘어선 대중적인 책이다.

그 가운데 <기도-내려놓기>와 <선방일기>는 작은 책이다. 작아서 눈을 끌지만 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럼 두 권의 책에 대해서 살며시 책장을 넘겨보자.




<선방일기>
이 책의 저자 지허스님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출가연대와 입적시기가 모두 추정하고 있는 것 외에는 없다. <선방일기>도 1960년대의 겨울안거 기간의 기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1960년대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모든게 부족한 시절이었겠다 싶다. 서울은 도시라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세상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겨울안거를 위해 강원도의 상원사로 걸어갔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버스가 다녀도 비포장도로에다가 하루에 몇 번만 다니는 길이었을테고, 그것마저도 월정사로 상원사로 이어지는 길은 더더욱 없었을테니 말이다.

동안거는 10월보름에서 1월보름까지 진행된다. 거의 백일에 가까운 기간동안, 하루에 12시간을 앉아서 ‘화두’와 씨름하게 되는 것이다. <선방일기>에는 선방수좌들의 마음과 행동이 담겨있다. 공동체의 삶이 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절이라고 뭐 넉넉했을라고! 거기에다가 선방수좌들의 절제된 삶이 어려운 살림에도 넉넉히 보냈을 것이다.

<선방일기>에서는 두 가지를 건질 수 있다.

첫 번째는 공동체생활이다. 현대사회가 개발과 성장의 틈바구니에서 개개인의 인간성은 상실되고 공동체는 붕괴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현대산업문명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발달하면 인간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불가능’하다는 비판속에서 실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객들의 안거는 철저한 공동체정신속에서 소임을 나누어 지낸다. 선객들의 안거생활의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닮는다면 공동체는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선객들의 안거생활이 그대로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그 모양새가 바로 공동체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고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가치와 목적을 두고 서로 의견과 성격이 달라도 함께 모여서 정진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의 과정이고 전부인것이다.

두 번째는 초발심이다. 올깨끼와 늦깨끼의 이야기에서 절에 먼저 들어와 ‘절밥도둑놈’이라는 욕을 먹는 것이 어찌보면 초발심을 잃고 사는 까닭일것이다. 한편으로는 ‘장판때만 묻히는’ 오래된 노장, 일상화되고 관성화된 절에서의 수행생활이라는 질타의 말이다. 또 처음 출가할때의 마음, 견성성불하겠다는 처음의 마음을 견지하라는 죽비의 소리이다.
지금의 정치인들도 처음 출마할때의 그 마음, ‘오직 국민’을 외쳤던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말이다. 이 책의 표지에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서재 속 한 권의 책’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충분하다.

<선방일기>는 동안거 기간동안의 일기다.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들을 모아놓기도 했고, 선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엮어놓기도 했고, 견성성불을 위한 일념정진의 이야기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글은 깔끔하다. 차가운 겨울 동치미국물 한 사발 마신 느낌이다.

또 한권의 책 <기도 -내려놓기>
이 책은 지난 7월 출간이후 불교도서총판 운주사의 집계에서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1위로 집계되는 책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았고, 지금은 사찰에서 <법보시>로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사람은 누구나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법륜스님은 ‘욕심’으로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느님과 부처님에게 비는 내용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들이 갖고 있던 ‘기도’에 대한 선입견을 몽땅 부정한다. 법륜스님은 서문에서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 때문에 일어납니다. 눈을 안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선방일기>에서 말하고 있는 선객들이 왜 면벽수도정진, 장좌불와하는 용맹정진을 하는지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직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겠다.

또 ‘내가 바라는 바가 성취되는 것이 <기도>라는 고정관념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라고 한다.

<기도>와 <선방일기>의 공통점은 그동안의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무장해제당하는 느낌이다. 차이점은 <기도>는 나를 숙여 엎드리는 절을 통해 참회하고 ‘아집’을 내려놓게하고, <선방일기>는 참선을 통해 몸을 조복받으며 ‘아집’을 벗어버리게 하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언어로 자분자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가르침은 울림이 크다. 채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 채워지는 진리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하는 사자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