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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할망의 설사가 제주의 360개 오름을 만들고~

할망의 설사가 제주의 360개 오름을 만들고~






우리에게 신화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곰과 호랑이를 통한 단군신화를 진지하게 듣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에잇, 거짓말 같은 이야기~’ 하면서 내던져버렸던 것이 신화이다. 그 다음에 자리한 것이 알듯 모를듯 하는 그리스신화다.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알쏭달쏭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단다. 그것도 제주도의 창세여신이야기다. 역사나 선사시대 이전의 존재감이다. 설문대 할망 - 여신이다. 신화는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비록 작은 땅 제주의 신화이기는 하지만, 그 활동영역은 제주의 작은 섬에 머무르지 않는다. 제주사람들의 상상속의 영역이다.

우주적 스케일이다. 오름은 할망의 똥구멍으로 만들었고, 할망이 오줌을 누었더니 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 같은 대표적인 이야기다. 제주에서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 한줄 갖고 신화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설문대 시절에...
성산리 일출봉에는 많은 기암이 있는데 그 중에 높이 솟은 바위에 다시 큰 바위를 얹어놓은 모양의 기암이 있다. 이것은 설문대 할망이 길쌈을 할 때에 접싯불을 켰던 등잔이라는데, 처음에는 바위가 하나뿐이었으나 불을 켜보니 등잔이 얕으므로 바위를 하나 더 올려놓아 높인 것이라 한다. 등잔으로 썼다 해서 이 바위를 등경돌이라 부른다.

설문대 시절에...
설문대할망은 키가 너무 커 놓으니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옷 한 벌만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속옷 한 벌을 만드는 데는 명주 백 통(1통은 50필)이 든다. 제주 백성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명주를 모았으나 99통밖에 안 되었다.그래서 속옷은 만들지 못했고, 할망은 다리를 조금 놓아가다가 중단하여 버렸다. 그 자취가 조천면 조천리, 신촌리 등의 앞바다에 있다 한다. 바다로 흘러 뻗어간 여(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줄기)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설문대 시절에...

한번은 설문대할망이 수수범벅을 먹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할망의 설사가 제주의 360개 오름이 되었다.

설문대 시절에...
설문대 할망이 오줌을 누기 시작하는데 오줌발이 세서 땅이 떠밀려나가 우도가 만들어졌다. 제주와 우도 사이에 만들어진 깊은 골에는 할망의 오줌이 가득 찼는데, 아주 깊어서 고래도 물개도 살 수 있었다.

설문대 시절에...
애월면 곽지리에 흡사 솥덕 모양으로 바위 세 개가 세워져 있는 곳이 있다. 이것은 설문대 할망이 솥을 앉혀 밥을 해 먹었던 곳이라 한다. 할망은 밥을 해 먹을 때, 앉츤 채로 애월리의 물을 떠 넣었다고 한다.

설문대 시절에...
하루는 배고 고픈 설문대 하루방이 설문대 할망에게 낚시를 가자고 제안한다. 하루방은 섭지코지에 도달해 바지를 벗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기로 바다를 휘휘 젓기 시작한다. 그러자 고기들이 놀라 반대쪽으로 도망을 가는데, 그곳에서 할망이 다리를 벌리고 있다가 하문(下門)으로 모두 빨아 올린다.

설문대 시절에...
설문대할망은 키가 큰 것이 자랑거리였다. 할망은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물들이 자기의 키보다 깊은 것이 있는가를 시험해 보려했다. 용담동에 있는 용소가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 보니 물이 발등에 닿았고, 서귀읍 서홍리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해서 들어서 보니 무릎까지 닿았다. 이렇게 물마다 깊이를 시험하며 돌아다녔는데 마지막에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섰다가, 그만 풍덩 빠져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물장오리가 밑이 터져 한정 없이 깊은 물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설문대 시절에...
설문대 할망이 잠을 잔다. 머리는 제주도의 최북단에 닿고 발은 최남단에 닿는다.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여신의 역할은 미미했지만 이처럼 한 사회의 중심에 놓여있는 여신은 제주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게 남자 중심의 가치관으로 재정립되어 있는 것은 비단 지금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 속에서 훈습되어진 또 다른 업이 우리들에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가끔 타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중심의 모계사회를 소개할 때면 어색하다. 그것에 대한 평가마저도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판단하며 ‘이상한 나라’로 재단한다.

짧은 문장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멀고 먼 옛날 세상을 만든 할망이 있었고, 똥으로 황금빛 오름을 빚고, 오줌으로 바다를 만들었던 거대한 여신 설문대할망의 신화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신화’로 묻어 둘 것인지, 혼돈의 시대에 ‘새로운 문명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하는 문제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 글은 2010.11.14에 포스팅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