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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신경숙과 노희경의 <엄마>



나는 오랜만에 눈물흘리면서 책을 읽었다. 노희경 원작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펼쳐 보았다. 최근 읽은 <나는 아버지입니다>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상(像)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그 아들이 ‘달리고 싶다’는 한 마디에 평생을 달렸다. 비록 첫 시작은 ‘아들을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변화를 보았고, '세상사람‘들의 변화를 만났다.


그 외에도 <엄마를 부탁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연극, 영화 등으로 새롭게 다루었고, <친정엄마>, <아버지> 등의 연극과 영화도 우리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재조명의 시도라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 <엄마를 부탁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엄마’를 다시 그리워해본다.



세 번 울었다 <엄마를 부탁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버지이야기로 흘렀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에 자식들을 찾아오다가 지하철에서 길을 잃고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나서며 어머니를 회상하는 이야기들이다. 평생을 남편에게는 순종하고 자식들에게는 양보만 하면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길을 잃은 어머니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는 모르나 중간 중간 어떤 할머니를 봤다는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얼핏 어떤 모습으로 길을 헤매고 있나 하는 것을 알 수도 있다.

“이 할머닌 젊잖아. 그 할머닌 아주 쭈그렁쭈그렁했어. 머리도 이렇게 안 생기고...... 거지였잖아.” (97쪽)
“발등이 찍혀서 고름투성이였어요. 자꾸 파리가 달라붙으니까 쫓고 있었는데......냄새나고 더러워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97쪽)
 
또 어머니를 회상하며 그 모습을 기억하는 장면도 있다.

서울에서의 첫밤을 스무살이던 그와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보낸뒤로도 엄마는 서울에 와도 편히 잘 방이 없었다.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에 온 엄마를 그나 동생들이 보러가는 그때도 엄마의 짐은 한보따리였다. ... 엄마의 보퉁이에선 신문지에 싸고 비닐에 싸고 때로는 호박잎에 싼 것들이 수두룩이 쏟아졌다. 엄마가 보퉁이 한구석에 둘둘 말아 끼워둔 헐렁한 셔츠와 잔꽃무늬 몸빼바지로 갈아입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127쪽)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를 추억하는 대목은 많다. 평소에는 눈여겨 보지 못했던 그 수많은 시간과 일들을 떠 올리며 다시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결국 잃어버린 엄마를 찾지 못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눈물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다.

노희경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동안 책을 밀쳐두고 있었다. 저자 인세를 전액 시민단체에 기부한다고 하길래 곁눈질 한 번 하기는 했지만 읽지는 않고 있었다. 블로그에서 한 페이지씩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전체를 읽어야겠다싶어서 시작했다. 표지에는 ‘노희경이 엄마에게 바치는 절절한 사모곡!’이라고 되어있다. 처음에는 ‘~절절한’이라는 표현이 걸렸다. 너무 지나친것 아닌가 싶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다. 의료사고로 월급쟁이가 된 의사남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직장 다니는 큰 딸, 대학입시 준비하는 삼수생 아들이 가족 전부다. 오줌소태로 병원에 가서 진단받았는데 암이란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엄마에게, 아내에게 제대로 해 준것 없고 퉁퉁 거렸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눈물흘린다. 명색이 의사인데 믿을 수 없다며 일단 수술하자고 하는 남편은 수술실에서 배를 갈랐지만 온 몸으로 번진 암으로 어찌할 수 없어 그대로 다시 봉합했다. 집에서 밥 한 번, 빨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큰 딸, 대학입시 준비로 마음고생한다며 내내 술마시고 들어오는 아들들은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흘린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가족들의 참담함은 눈물이 된다.
 
“니 누나 곧 죽는데...”
근덕은 넋이 나간 얼굴로 악을 쓰며 울부짖는 근덕댁을 바라보았다.
“그거, 니 누나가 자기 죽으면 너한테 주려고 식구들 몰래 들어 놓은 거래! 알어? 이 나쁜 인간아... 행여, 행여 니가 그 맘 알겠다, 행여 니가 알겠어! 너 같은 인간이 뭘 알어?” (233쪽)

“아니다. 니 엄마가 불쌍해서 그렇지, 난 괜찮다. 너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니 엄마가 지금 죽는 게 다행이라고... 남보다 고생을 두 배는 더 한 사람, 좀 더 일찍 좋은 데로 간다고. 난 그렇게 믿기로 했다.” (256쪽)

“어머니,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나랑 같이 죽자!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나랑 같이 죽자! 어머니이...”
연수는 울컥 눈물이 치밀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274쪽)

“어머니, 어젠... 미안해. 내 맘 알지?”
할머니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엄마는 다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말 하는 거 아닌데... 어머니, 정신 드실 때 혀라도 깨물어. 나 따라와. 아범이랑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 따라와. 기다릴게.”
엄마는 할머니의 손목을 끌어다 얼굴에 갖다 대고 흐느꼈다. (278쪽)

아내도, 누나도, 그리고 누나의 가족도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근덕은 요 며칠 택시를 끌고 누나 집 주위를 뱅뱅 돌기도 했다. 엄마 같은 누나였다. 그런 누나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누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모질게 했던 일들이 떠올라, 차마 앞에 나타나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못나디 못난 동생이 바로 자신이었다. (288쪽)

엄마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아들에게 쥐어주었다.
“이거 나중에...니 마누라 줘.”
엄마는 정수가 그 바지를 받지 않고 자꾸 고개만 젓자 마침내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잊어 먹을까봐 그래. 아무리 뒤져봐도 엄마가 이거밖에 줄 게 없다. 미안해”
정수는 엄마 품에 안겨 울음을 삼키느라 이를 악물었다. (294쪽)

노희경작가는 후기에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아니 자기도 울면서 썼다면 울지 않게 마지막에 <그래서 잘 살았다.>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내면 되잖은가? 왜 읽는 사람들 울리고 그래.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대학 때 가출한 나를 찾아 학교 정문 앞에서 허름한 일상복으로 서 있던 어머니가 언제나 눈에 밟힌다. 그때도 이후에도 왜 안 그분께 미안하단 말 한마디를 못 했을까. 바라건대, 그대들은 부디 이런 기억 갖지 마라.
 

우리 어머니때문에 또 울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를 떠 올린다. 가끔 드는 생각은 돌아가신 분 떠 올리는 것은 아직 내 마음속에 그 분을 놓아드리지 못함인가? 하는 것이다. 뭐 그리 한 많은 게 있다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으로 기억하는데 비가 내리면 나를 안고서는 한글을 가르쳤다. 지금은 한글을 익히고 나서 유치원에 간다더만, 그때만 해도 글자는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었다. 덕분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익혔다. 요즘세대의 엄마들이 아이들 학원보내며 성적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과는 다르다. 평생 내가 다니는 학교에 오신 적이 없다. 초등학교 입학 할때는 아버지 손 잡고 다녀왔고, 그 뒤로 부모님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 오신 적이 없다.

좋은 그릇과 찻잔이 생기면 애들 일 치룰 때 챙겨줘야 한다며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모르긴 해도 누나가 시집갈 즈음에는 유행 지나고 철지난 것들이라 좋아했을까 싶다.

젊은 나이에 병으로 몸져누웠을 때도 당신이 가는 길을 알았던지 병간호하던 막내누나에게 내가 죽거든 당황하지 말고 누구누구에게 연락하고, 삼베옷은 어디에 두었고, 통장과 도장은 어디에 있으니 어떻게 하라며 미리 준비한 것들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도 뚜렷하지도 않고 병이 호전되지 않자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점쟁이 무당이 ‘이 집 막내아들이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네~!’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중에 나를 불러서 대학생인 막내가 걱정되었던지 ‘어떻게 살거나?’고 물었는데 그때 확실하게 이야기해 드리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어떻게 대답하는 게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일까 싶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막내누나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붓글씨 쓰는 것을 보고 지레짐작 넘겨짚어서 하는 이야기니까 신경 쓸 거 없어!’하는 바람에 넘어갔다.

가르침은 많았지만 항상 귀에 남는 말이 있다. ‘빌린 돈은 빨리 갚아줘라’, ‘밥 먹을 때 깨끗하고 먹고, 입 벌려 소리 내어 먹지 말라’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족한 살림인데도 돈이 필요하면 ‘빌렸다’고 하면서 받아간 적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세 번 울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뒷부분으로 갈 수록 결말이 두려워서 읽을 수가 없었다. 다 읽고서는 미친 사람처럼 밤길을 헤매며 혼자 눈물을 삼키며 허둥지둥 걸었다. 엉엉 소리 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드라마는 더 감동적이라 하니 챙겨봐야겠다.

우리에게 눈물이 남아 있는 것은 그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게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손 등이 거친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 과거의 참회이고,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한스러워 그런거다.
날씨가 춥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 되는 자식들은 설에 어디 다른데 여행이나 떠나려고 하지 말고 부모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드리고 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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