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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고귀한 이름 : 아버지




 

나는 아버지입니다.

딕호이트, 던 예거 공저 | 정화성 옮김
2010년 12월 07일 출간
황금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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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입니다. 제목부터 수상하다. 우리시대 새로운 자화상으로 어깨처진 ‘아버지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서, ‘그래도’ 아버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책이 나왔나 싶을 정도의 오해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해는 역시 오해다.

여기 이 책의 내용은 아버지 ‘딕 호이트’와 아들 ‘릭 호이트’의 이야기이다. 목에 탯줄이 감긴채 태어나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가 된 아들의 인생을 새로 살린 이야기다. 의사를 비롯해 세상사람들은 아들을 포기하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첫 번째 아들인 ‘릭 호이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들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할 수 없었고, 팔다리를 경련일으키듯 움직이거나 고개를 젖히고 웃는 것이 표현의 전부였다. 컴퓨터를 이용해 의사전달할 수 있게 되었을때 아들의 바람은 단순했다.

“달리고 싶어요.”

그날부터 아버지는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달렸다. 처음으로 8km 달리기 대회에 나가 겨우 꼴찌를 면했지만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 처음으로 내 몸의 장애가 사라진 것 같았어요.”

부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지난한 삶의 여정을 돌이키며, 아들의 장애에 대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생각하며, 그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던 것을 생각하며 함께 눈물흘릴 것이다. 정말로 울컥하는 대목이다.

일단 추천?!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이 부자의 이야기는 마라톤, 철인3종경기, 미대륙횡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라톤 64회, 단축 철인3종경기 206회, 보스턴 마라톤 24회 연속 완주의 대기록, 그리고 6,070km의 미국 대륙을 달리기와 자전거로 횡단하기도 했다.



아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에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아들 릭 호이트는 남성잡지 <멘즈헬스>에 ‘아버지는 내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버지는 단지 내 팔과 다리 역할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 영감의 원천이고 내가 인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의 마지막부분에 아들 릭의 편지가 실려있다. 물론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그대로 옮겨본다.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건 턱없이 부족한 말이에요. 그래도 제게 헌신적이었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군요. 아버지가 그랬듯이 저도 아버지께 헌신적인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286쪽)

이 대목에서 얼마전 영면한 소설가 박완서님의 ‘나목’의 글가운데 사랑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 생각난다.

사랑이란 말은 하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느라 그를 향한 내 지극한 갈구를 담기에는 너무도 닳아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엔 암만해도 딴 낱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안 써본 슬프고 진한 어휘가.




나는 이 한 장면의 사진으로 온갖 아픔과 시련, 기쁨과 희망을 상상하며 읽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에 대한 부모의 무한책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단순히 아버지로서 부모로서의 책임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만 이야기한다면 이 책은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신문가십거리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단지 달렸다는 이야기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1. 자식에 대한 무한책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갖는다. 미운 7살 - 요즘은 미운 4살이라고들 하지만 - 이라 해도 자기 자식은 고운 법이다. 그래서 이런말들도 한다. ‘고슴도치도 제자식은 예쁘다’라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너도 결혼해서 자식 낳아봐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장애를 가진 자식이 태어나면 힘들어한다. 물론 힘들어하는 것을 이해는 되지만 앞서 말한 자기 자식에 대한 무한 애정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자식이 태어나면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법륜스님은 <스님의 주례사>에서 자식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조한다. 단순히 한 개인의 자식으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강연에서도 자식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로 힘들어할 때에는 말로 회초리를 든다.

이 책에서 딕 호이트는 그 어떤 장애보다 심각한 아들 릭 호이트를 포기하지 않고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달리고 달렸다. 변화가 일어나고,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2.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장애를 바라보는 시설과 우리들의 시선은 아직 미흡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하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릭의 장애가 어느정도인지 상상이 되지 않고 간혹 글속에서 나타나는 것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장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일구는 아버지의 노력은 우리들로 하여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릭이 공립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려고 할때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릭의 장애에 대해 염려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마라톤대회에서도 정식 참가자로서의 자격을 주지않는 것이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본원칙과 입장을 보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선입견이 더 큰 문제임은 틀림없다.

‘장애’에 대한 이러한 시선을 부드럽게 만든 것 또한 아버지 딕 호이트의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기적이다.


3.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장애를 가진 릭 호이트와 그를 포기하지 않은 그의 아버지 딕 호이트의 눈물겨운 사투는 남다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단순히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父情이라고만 이해했으나 책장을 계속 넘기면서는 ‘아들을 위해서’ 달렸던 것은 아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이 부자의 감동스런 발걸음을 보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쉽게 포기하고 게으르고 버릇대로 살면서 우리는 변화를 꿈꾸고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고는 부러워한다. 이 책은 아침운동을 계획했다고 며칠하고는 포기해버린 이 땅의 게으른 사람들을 문 밖으로 내보낸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간의 세월이 묻어 있다. 땀이 보인다. 숨가픈 시간들이 흐른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어떤 책인가 본다는 마음으로 펼쳤다가 끝까지 읽게 되었고, 그의 동영상과 사이트를 통해 사진도 함께 보았다.
http://www.teamohyt.com에 들어가면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