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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동의 하루

오미자 : 겸손을 배우다





박(朴)이라는 분이 오미자청을 직접 만들어 병에 담아왔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감기를 앓는 사람들이 많고, 그 가운데 목이 아프고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면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가끔 오미자차를 마셔보기도 하고 전통찻집에 들러 여름에는 오미자차를 시원하게도 마셔보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곡물같은 것이 아니라 잘 알지 못했다. 이번기회에 차를 마시면서 벌컥벌컥 마셔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찾아보려고 눈을 감았다.


곱고 맑은 붉은색 - 수렴

붉은 색이 곱다. 그냥 ‘곱다’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고 지나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박제가가 갓 스물이 되었을때 지은 시중에서 책만 보는 바보라는 이덕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

‘붉다’는 그 한마디 글자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마라.

박제가가 노래한 꽃이야 울긋불긋 온갖 모양과 색깔로 산천을 물들이니 그리 노래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 붉은색 하나만 있다. 그런데 그 붉은 색 하나만으로 딱 단정 짓기에는 아쉽다. 투명하기가 소녀 같고 그 깊이는 알듯 모를 뿐이다. 일찍 저무는 해 따라 술 한 잔 드시고 기분 좋게 비틀거리는 아버지의 볼이 저 색일까, 차가운 바람 실눈으로 맞으며 하얀 목덜미 감추는 누이의 스카프가 저 색을 닮았을까, 어설픈 도마 칼질에 살짝 밴 살 틈으로 비집고 나오는 핏방울이 저럴까, 붉은 쪽으로 바라보면 부끄럽고, 짙은 쪽으로 바라보면 비장하다.

매끄럽고 두터운 백자 같은 잔에 담아도, 가느다란 꽃그림 선으로 점으로 묻어있는 유럽풍의 얇은 잔에 담아도, 목덜미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마냥 컵 가장자리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히도록 얼음과 함께 긴 유리잔에 담아내도, 투박한 사발에 담아내도 그 색과 맛을 다 받아준다.


다섯 가지의 맛 - 조화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껍질에는 단맛, 살은 신맛, 씨에는 맵고 쓴맛과 더불어 떫은 맛이 나며 잘 익은 열매는 단맛이 있고 독특한 향기가 난다. 뭐 그리 미각이 발달한 것은 아니지만 다섯 가지의 맛을 찾으려 애를 쓰면 살짝 아주 짧게 단맛이 스치다가 끝에는 떫은맛의 쓴 기운이 조금 느껴진다. 그런데 매운맛은 못찾겠다. 서로가 숨은 듯 제 역할을 하면서 전체의 맛을 내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도 그러해야 한다는 가르침인것 같다.

다 제각각 맛이 강하면 도대체 어떤 맛일까? 고소한 참깨에서 얻은 참기름도 신맛 강한 식초와는 음식에서 상극이라 서로 섞어서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고 한다. 하물며 단맛, 신맛, 쓴맛, 매운 맛, 떫은 맛이 서로 섞여서 오묘한 오미자를 완성하는 그 에너지는 무엇일까? 강한 개성이 부딪쳐서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죽음으로 서로 살리는 살림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






약용과 식용의 구분을 넘어 - 쓰임

오미자를 고를 때는 과육에는 살이 많고 진이 나오며 독특한 냄새가 있고 신맛이 강한 것이 좋다고 한다. 더불어 흰 가루가 묻어 있지 않은 것이 좋다. 오미자를 보관할 때는 냉동실에 보관을 해야 한다. 오미자는 말리더라도 속까지 완전히 건조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쉽게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손질할 때 신선하지 않은 과실은 걷어내고 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이용하면 된다. 중국, 대만, 한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문경 오미자가 전국적으로 많이 나고 좋다고 한다. 가을에는 오미자축제를 열기도 한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받기도 하지만 축제할 즈음에 문경새재도 구경할 겸 직접 나들이 가서 가격과 양을 흥정하는 것도 맛이다.

예로부터 오미자는 약용으로도 널리 이용되어 왔다. 약용과 식용의 구분과 차이가 뚜렷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옛말에 식탐을 없애면 음식이 보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약용식물사전에 보면 자양강장제, 진해거담제 또는 수렴제로 정(精)을 증진시켜 내분비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킨다고 한다. 또 주독을 풀고 기침해소를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초서에서는 피로한 몸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하고 신장을 데우며 음(陰)을 강하게 하고 남자의 정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갈증해소에 좋고,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우면서 나는 신열, 무더움, 무더위 등의 번열을 없앤다고 한다. 사고력과 집중력에 좋기 때문에 수험생에게 좋고, 치매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생오미자를 꿀이나 설탕에 재워 오미자청을 만든 후 희석해 오미자차로 마시거나 각종 요리의 재료로 활용해도 좋다. 오미자로 만드는 음식으로는 오미자국, 오미자편, 오미자화채, 오미자차, 오미자술 등이 있는데 근래에 와서 오미자차와 더불어 술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가운데 복분자처럼 정력에 좋다는 말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떤 소주는 숙취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다고 광고를 하는데 실제로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는 양을 흡수하려면 소주 20병을 먹어야 한다는데 숙취해소는 커녕 몸을 더 상하게 만들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앵두를 꿀에 재어두었다가 오미자 냉차를 마실 때마다 두세 알씩 띄워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오미자차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음료로도 좋다. 수분 섭취를 도와주고 다이어트 중 부족하기 쉬운 미량영양소를 보충해 주고 칼로리가 없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홍차가운데 얼그레이 아이스티도 오미자와 색깔은 조금 다르지만 다이어트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오미자를 닮다 - 겸손

오미자를 닮아야겠다. 서로의 개성이 부딪치지 않고 존중하는 겸손의 삶을 배워야겠다. 물이 담기는 그릇모양대로 자기의 모양을 만들어내듯이 오미자의 색깔도 그 어느 곳에 담아도 어울리는 것을 보며 다시 배운다. 중국의 임제선사가 남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말은 항상 명심문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머무는 곳마다 진실 되라는 말이다. 오미자처럼 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흡수의 수렴과 다양한 색깔과 하나가 되는 조화의 삶,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잘 쓰이는 삶이야말로 가장 생태적이고 평화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생명가치라 할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날마다 뜨는 해는 어제 것이 다르고 오늘 것이 다른 게 아닐지라도 새롭게 마음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새해를 맞이하여 오미자차 한잔 마시며 망상 피운다.


오미자청 만드는 법
1. 가을철에 오미자를 따면 오미자와 설탕을 같은 양으로 켜켜이 넣어 재운다.
2. 서늘한 그늘에 두어 100일간 숙성시킨다. 더 오래두면 발효되어 술맛이 나게 됨
3. 채반을 이용하여 걸러 원액을 따로 모으면 오미자청이 된다.
※ 남은 찌꺼기는 따로 모아 술을 첨가하여 오미자주를 만들기도 한다.
4. 서늘한 그늘에 보관하여 여름까지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