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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동의 하루

오디를 먹어보았나요?




오디쥬스 한 모금, 미안하다




<과거의 추억>

어제 내린 비로 온 동네는 덜썩인다. 그동안 오래된 가뭄 끝에 농사는 어찌할까 염려도 되었던 터러 비가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물을 한 움큼 쥐고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듯, 사람들은 논둑을 만들고 물을 가두기에 바쁘다.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소등에 멍에를 씌우고 쟁기로 논을 갈아 엎으면서 모내기준비를 한다.

잠깐 멈춘 비는 구름사이로 햇살을 비켜내주고 동네 아낙들은 머리 머리에 넓은 광주리를 이고 손에는 찜통같은 국솥을 들고 힘겹게 뒤뚱뒤뚱 논둑길을 따라 걸어온다. 뭔가 걸음걸이가 불안해보이지만 한번도 쉬지 않고 걷는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도 광주리를 받아주기는 커녕 일을 쉬 끝내려 하지 않는다.

논두렁 끝 풀밭위에 광주리채 넓게 음식을 펴고 밥을 그릇마다 푸고나면 그제서야 소를 무논한 가운데 세워두고 갈무리하며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다. 점심식사는 국수다. 멸치가 그대로 둥둥 떠 있는 다시국물을 두 국자씩 얹어준다. 하얀 소면은 국물과 만나서 풀어지고 다시 온갖 양념으로 만들어진 간장으로 맛을 무장한다.

 

<오디의 추억>

어리다는 이유로 모내기준비를 하는데 도움은 안되지만 밥먹을때는 꼭 끼어서 한술 떠야 한다. 나중에 따로 챙겨줄 여력도 없거니와 남들 먹을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루룩 한 두 젓갈 입으로 빨아들이고 나면 한그릇 금방이다.

숟갈 놓자마자 아이들은 얼른 산으로 들로 비온 뒤 떨어져 있을 오디를 찾아 떠난다. 6월이라 초여름에는 오디가 한창이지만 이 철도 지나고 나면 한여름 장마뒤에는 살구나무, 자두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은 오디철이다. 좀 더 길게 가기도 하지만 철이라는 것은 우리가 재미있어하고 먹고싶어하는 것이 철이다. 그것도 그 철 지나면 외면하고 만다.

뽕나무에서 열리는 달콤한 맛을 가진 오디는 모양에서는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따 먹는 것이 그들의 간식이었다. 봄에는 삐삐가 있고, 찔레순이 있었다. 초여름에는 오디가 있고, 한여름에는 머루, 다래가 대표적이다.


<뽕나무와 오디>

오디의 모양은 복분자나 산딸기와 비유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색깔은 복분자는 붉은 색이라면 오디는 검은색에 가깝다. 복분자는 전체가 둥근모양이라면 오디는 누에모양처럼 길게 타원형을 그린다. 오디는 복분자와 같이 안토시아닌 색소를 띠어 항산화작용을 한다. 노화방지, 시력개선에 효과가 있고 오디씨는 복분자나 딸기의 씨처럼 씹히는데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한다.

<오디>라는 말은 나이들어 고상한 척 사용하는 말이고 경상도 산골에서는 <오들개>라고 했다. 처음 열렸을때에는 연두색이거나 초록색이다. 서서히 날이 지나면서 익어가면 초록색은 붉은 색으로 바뀌고 다시 검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변한다. 익으면 즙이 풍부해지고 달콤함이 강해진다. 붉게 되었을때에는 아직 덜 익었을때인데 신맛이 강하게 있다.

뽕나무는 예로부터 밭둑이나 산골짜기에 많이 심었고 한국과 중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뽕나무 잎으로 누에를 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디는 부산물인 셈이다.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오디를 따 먹는게 재미다. 손끝이 시꺼멓고, 입안과 입주위가 검푸르게 변할때까지 따먹는다.


<오디가 어디에 좋을까?>

한국사람은 매운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신장이 나빠지고, 신장이 나빠지면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심하면 두통까지 생기게 된다. 오디는 강장제로 알려져 있는데, 간장과 신장의 기능을 좋게 한다. 이것은 피를 맑게 함으로 신장과 간장이 좋아지는데 ‘정력에 좋다’는 말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갈증해소에도 좋고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알코올을 분해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불면증과 건망증에도 효과가 있고, 머리가 세는 것을 막아주고 조혈작용이 있어 류마티즘에도 효과적이고,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도 효과가 있다.


<오디쥬스 만드는 법>

모든 과실들이 그러하겠지만 제철에 수확하여 저장하거나 담그기도 한다. 엊그제 오디원액을 내려서 가져온 박(朴)이라는 분에게 묻기를 ‘오디가 어디서 나서 원액을 만들었습니까?’ 하였다. 낯부끄러운 질문이다. 무슨 냉장보관을 해 오던 오디를 사다가 담근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디가 나는 철에 사다가 설탕과 오디를 1:1로 섞어서 장독에 넣고는 장독입구를 비닐로 밀봉한 채로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두었다고 한다.

100일이 지나면 꺼내서 원액을 먹을 수 있고, 오래 두어도 좋다고 한다. 3년을 두면 보약이 된다는데 건강이 부실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 장독을 열었다고 한다. 체에 걸러서 원액은 받아서 병에 담고 남은 건더기로는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남은 건더기로 만들 수 있는 방법>

① 오디쥬스
남은 건더기로는 함께 갈아서 쥬스에 섞어서 먹어도 좋다고 한다. 그러면 씨가 함께 씹히는 것이 오디의 맛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여름 초입의 오디를 그대로 따서 믹서에 갈아서 쥬스를 만들어 먹는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② 오디주
남은 건더기에 다시 소주를 부어주고 기다리면 새로운 와인이 탄생할까? 오디주~ 복분자주와 효능은 비슷하지만 맛과 향은 독특한 오디주가 만들어질 것이다.

③ 오디잼
남은 건더기를 약한 불에 계속 저어주면서 끓인다. 오디잼이 만들어진다. 베이글이나 식빵위에 오디잼을 올리면 상큼한 에너지가 감돌 것이다.


<오디쥬스 한 모금, 미안하다>

오디쥬스를 만들어냈다. 원액에 따뜻한 물을 부어 섞기도 하고, 찬물을 부어 섞기도 하지만 따뜻한 물보다는 찬물이 오디의 상큼함을 더욱 잘 받쳐주는 듯 하다.

‘오디를 드셔 보셨나요?’, ‘오디를 아세요?’, ‘오디의 향을 아세요?’라고 이래 저래 물어본다. 어린시절 산골에서 자랐느냐는 질문이다. 어린시절 산골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오디맛을 제대로 알리는 없다. 그냥 도회지에서 딸기바구니에 딸기 사 먹듯이 사서 먹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오디맛을 알 수는 없을게다. 아니 알 수 없어야 한다. 두메산골에서 산이며 들로 뛰어다니며 맛본 것이 진짜 맛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면서 눈물이 난다. 미안한 마음이다. 오디 한 알 한 알을 주워서 겨우 한 움큼이 될 때 먹거나, 한 알씩 입에 넣어 톡톡 터지는 맛을 보다가 이것은 한꺼번에 쏟아붓는 느낌이다. 상큼함이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미안하다. 이래 한꺼번에 쏟아붓듯이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에 미안한 것이다.

초여름 온 산과 들은 풀냄새뿐이다. 그 속에서 떨어진 오디를 먹을때 느끼는 그 초여름의 상큼함을 안고 있다. 한 모금에 모든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비온 뒤 무논에 소끌고 쟁기질 하는 아버지며, 새참내 오는 엄마의 발걸음이며, 오디 주워먹다가 오디로 물든 옷하며, 온 산과 들로 뛰어다니던 어린시절이 그대로 스쳐지나간다.

지난 번 오미자를 맛볼때도 오미자 철이 지난 겨울에 그 감상을 느꼈는데, 이번에도 오디가 나는 철이 아직은 멀었는데 그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몇 십 년의 세월을 그대로 거슬러 내 입안 가득 향기를 품고 있다. 오디쥬스, 맛보실 분은 오세요. 몰래 숨겨두고 약으로 먹으라는데 그 풋풋한 향기를 자랑하고 싶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