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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동의 하루

일본에의 예의 : 시인 고은의 글을 읽으며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하루 하루 들어오는 소식에 안타깝다. 가슴철렁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의 애정에도 감동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도 영토분쟁을 미루고 지원을 우선하는 모습에서 대국의 모습을 본다. 또 일본국민들의 질서에 대해서 <인류의 진화>로 칭송하는 것에 숙연해진다. 사람이 감동이다. 재앙을 재앙으로 좌절하지 않고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은 일본의 저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전쟁이 난다면 저런 모습일까? 북한과의 전면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잃을게 많은 우리로서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는 소리인가 싶다.

 

▲ 한겨레 2011. 3. 15일자 1면 / 대재앙앞에 인간이란… 지난 11일 밀어닥친 지진해일로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에서 13일 한 소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먹이고 있다. 나토리/AP 뉴시스


오늘 아침 한겨레 1면에 시인 고은님의 아름다운 시를 보며 마음을 포개고 눈물을 더한다. 연륜에서 나오는 말과 글이 시가 되었나 싶다. 평범하리만치 잔잔히 들려주는 시의 음성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일본에의 예의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
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닌 속수무책으로 실시간의 화면을 본다

몇 천일지
몇 만일지 모를 일상의 착한 목숨들
이제 살아오지 못한다
어머니도
아기도
할아버지도 휩쓸려갔다
아버지도
누나도 친구들도 어느 시궁창 더미에 파묻혔다
그리도 알뜰한 당신들의 집
다 떠내려갔다
배들이 뭍으로 와 뒤집혔고
차들이 장난감으로 떠내려갔다 우유도 물도 없다

인간의 안락이란 얼마나 불운인가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무명인가
인간의 장소란 얼마나 허망한가
저 탕산 저 인도네시아
저 아이티
저 뉴질랜드
오늘 다시 일본의 사변에서
인류는 인류의 불행으로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나 일본은 새삼 아름답다
결코 이 불행의 극한에 침몰하지 않고
범죄도
사재기도
혼란도 없이
너를 나로

나를 너로 하여
이 극한을 견디어내고 기어이 이겨낸다
오늘의 일본은
다시 내일의 일본이다

내 이웃 일본의 고통이여 고통 그 다음이여
오늘의일본으로
이후의 일본 반드시 세워지이다.

<시인 고은>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
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

고은시인의 시는 아름답다. 평범한 언어가 만들어낸 감동의 글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위에 시작하는 언급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일본의 대재앙이 바로 바로 속보로 보여주는 그런 현실속에서 보여지는 재앙과 아픔에 빈소리 누가 낼 것이며, 누가 입다물고 고개돌리겠는가? 전 세계가 내 일처럼 돕고 나서고 있다. 참 아름다운 모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그러한것에 다행이다 싶다.

우리에게 절망만이 있고, 인간의 이기심만이 존재하는 그런 동물적 성향때문에 자기부정과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또 이러한 모습때문에 역시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지금 북한은 그렇게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는 대재앙을 맞이하고 있지만 알지 못한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침묵>하고 있다. 또 <고개돌리고> 있다. 그 보다 앞서 식량주면 총알되어 돌아온다, 식량지원하면 북한주민에게 간다는 보장이 있는가, 더 굶겨 붕괴의 길로 가게 해야 한다는 등 죽음앞에 배고픔앞에 <빈소리>하고 있다. 그런 북한동포들의 죽음앞에 빈소리내고, 고개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다. 

북한동포들의 배고픔을 이야기하고 사람이기를 요청하는 고은 시인의 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