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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달마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삶이다





> 달마에서 혜능까지 구도의 발자취를 만나다!

 

깨달음과 선의 세계를 집대성한 고은 시인의 대하소설 『선(禪)』. 이 소설은 이미 15년전에 발표한 것을 다시 출간했다.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선의 역사를 소설의 형태로 정리한 구도소설이다. 달마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이후 중국 선불교 초초 달마대사에 대한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 또 달마에서 이어진 선불교는 6조 혜능대사로 이어져 꽃피우게 되고 다시 한국의 선불교로 이어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달마가 중국으로 와서 양무제를 만난 유명한 일화도 있다. 절을 짓고, 경전을 발간 유포하고, 스님들을 후원하면서 불교를 발전시킨 양무제가 공덕을 묻는 자리에서 '아무 공덕도 없소'라고 말하여 양무제를 당황하게 만든 일 말이다. 그 이후 9년간 면벽수행하면서 혜가가 도를 구하는 자신의 열정을 보이기 위해 팔을 잘라 법을 구하는 것도 유명하다.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혜능이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는 출가수행하여 법을 잇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달마에서 혜가, 승찬, 도신, 홍인으로 이어지고 혜능으로 이어지는 법통에 대해서 기술하고만 있지 않다. 달마에서 혜능까지 이어지는 선불교의 법통을 그렸다는 것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책을 열고 처음을 읽어내려가면서 새로운 환한 빛을 만난 셈이다. 그것은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도 없거니와 비록 사실이 아닌 허구라 해도 상관없을 충격이다. 마치 생생한 어제의 일을 전하듯 달마가 배를 타고 육로로 걸어 중국에 닿는 과정은 드라마 그자체다. 오래 전 그 당시의 상황을 볼때 살아서 도착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으니까 말이다.

또 그의 제자 혜가나 또 그 혜가의 제자 들이 법을 구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십시오' '그래 불안한 마음을 내 놓아라'하는 것도 짧은 문장으로 대치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이 있고, 또 그것을 깨치는 것도 말 한마디에 깨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흐른다. 그것들을 메우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저자 고은도 대하소설 『선(禪)』을 읽을때는 단단히 각오하고 읽으라 하고 있다.


> 달마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삶이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기술이 아닌 것과 지금에 집중하여 읽어야 할 까닭은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개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찾기위함이다. 그 목적이 상실한 때에는 역사는 한갓 글자에 불과할 것이다.

최근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의 자리에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십시오'라는 질문들을 받게 된다. 또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주십시오'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코 밖을 고쳐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특별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안고 있는 질문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게 하고 안을 살피라고 시선을 돌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사람들은 스님들은 산속에서 수행에만 전념하지 사회문제에 왜 참여하느냐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를 비롯해서 많은 종교들이 우리사회의 많은 모순과 문제들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붓다와 예수의 경우에는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지도자였다. 개인의 고뇌와 사회적 모순들을 접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는데 지금의 종교는 그렇지 못하다는 평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역할을 교회안에서, 절안에만 묶어두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붓다와 예수가 그랬듯이 개인의 고뇌와 사회문제에 어떤 해답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일 것이다.

달마가 붓다이후 그 법을 중국에 와서 펼치고 불안한 역사의 현실속에서 외적인 형식과 모양을 넘어 그 속내에 담고 있는 본질의 대답을 통해 법을 이어주었듯이 우리는 달마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달마가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넘어와 법을 전하고, 다시 한국으로 이어진 선불교의 핵심을 역사적 관점으로만 이해한다거나, 종교라는 영역의 편협된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모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달마의 손가락만 보고 시비를 운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