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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태교는 세살까지 이어진다 <엄마수업>


1. 여자, 아내, 엄마~

우리들은 <엄마>에 대해 각별하다. 지금 내 옆에서 가장 편하게 소리 지르는 <엄마>는 각별하다. 요즘 아이들의 엄마와 이 엄마들의 엄마는 조금 다르기는 하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그야말로 못 배우고 아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다. 또 노희경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죽어가는 엄마는 그저 남편과 가족에게 순종하는 이미지다. 그래서 더 가슴 짠하게 <엄마>를 만났는지는 모른다.

요즘 아이들의 <엄마>는 좀 다르다. 고학력에 아는 것이 많은 <배운여자>들이다. 그래서 더 고뇌가 많은지도 모를 일이다. 자아실현은 둘째치고라도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문제로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잘리지 않으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러면 승진도 하고 그에 맞는 책임의식도 증가하게 된다.

나이가 되면 엄마들은 아들딸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난리다. 결혼해서 시댁 눈치 보랴, 남편 맞추랴 그 힘든 이야기에 눈물까지 글썽이면서도 굳이 결혼시키려 한다. 옛날이야 서로 결혼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독립적으로 살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어서 혼자 사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여자>로서의 자존감보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법륜스님은 전작 <스님의 주례사>에 이어 <엄마수업>을 펴냈다. 그동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책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많이 접해왔다. 지금 내 삶의 조그마한 변화, 생각의 변화를 끌어 온 것도 법륜스님이었다.

아이는 세 살때까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엄마가 돌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엄마에게 사랑받을 아이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여자가 아닌 엄마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왜 여자가 희생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항변한다. 여자가 아닌 엄마의 삶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것을 간과한 모양이다.



 





2.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들

사실 처음 들었을때는 충격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3년은 엄마가 길러야 한다는 말씀은 ‘그렇게 하면 좋은 일’이라고 간단하게 여기고 넘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경제사정도 그렇거니와 대부분 맞벌이 직장생활로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게 생긴 아이는 친정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봐준다.

지난 연말에 어느 일간지에 <손자・손녀 돌보기 배우는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예비할머니 교실>이 열렸다는 내용이다. 저출산, 이혼율최대 등의 오명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맞벌이부부 가운데 4명중 1명이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긴다고 한다. 직장인의 70.9%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고, 어떤 설문조사에서 48.6%가 ‘부모 도움 없이는 맞벌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시점에 조손(祖孫) 양육에 의존하는 비율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3.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

그러나 최근 가족행복 이야기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법륜스님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100회 연속강연을 열고 있는 법륜스님은 아이가 사춘기시절을 지나면서 폭력적으로 바뀌고, 컴퓨터 오락만 하거나 대인기피현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질문한 어느 가정주부에게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봐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여러분들이 남녀평등을 법률적으로만 따지지 말고, 마음에서 의지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주인으로 여러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나 며느리가 직장생활 한다고 손자, 손녀를 봐주는 일을 해서도 안됩니다. 손자를 봐주면 일시적으로 좋은데 그 손자는 자기가 태어나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 그것을 뺏기는 겁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자기를 위해서는 직장도 그만두고, 아무리 높은 직위도 버리고, 명예도 포기하고 자기를 우선시하는 그 <사랑>을 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어릴 때 이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고파병’에서 해방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것을 뺏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팽개치도록 돕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등에 업고 직장을 다니든지 직장에서 휴가를 내든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라면을 끓여먹고 살 마음이 필요하고, 셋방에서 조그마하게 살 마음이 필요합니다. 애가 세 살 될 때까지는 부모는 감수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렇게 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자녀들이 이제 결혼했으면 자기들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아이구 내가 애 봐줄게, 직장 다녀야지~’하면서 어쩌라 어쩌라 합니다. 또 그러면서 잔소리를 엄청 합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는 정을 끊어주는게 최고로 자식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원망을 해도 괜찮습니다. 간섭을 함으로 해서 원망으로 원수되는 경우는 있어도, 얼굴 안 본다고 원수되지는 않아요.


이 이야기는 그대로 <엄마수업>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세 살까지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어릴 때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사춘기때는 지켜봐주는 사랑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한다.


4. 태교는 세살까지 이어진다.

태교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다. 법륜스님의 글을 읽다보면 태교는 태어나서 3년까지는 해야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전에는 <태교>라는 것이 그저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그림을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만 이해했는데 그 근본은 <엄마>가 최고의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최고로 편안한 상태가 되려면 아이를 가진 <엄마>의 지극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엄마>만의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좋은 그림과 좋은 음악을 듣는 것 처럼 엄마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주려면 주변환경도 중요하다. <아빠>를 비롯한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함께 노력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손주를 원한다면 좋은 할머니가 되어 고부갈등이 없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5. 엄마수업

<엄마수업>은 엄마를 위한 책이지만, 엄마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비엄마, 초보엄마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이>라는 존재는 가족안에서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 구성원이고 미래세대의 주요한 인적자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성장할 때, 사춘기를 앓을때, 또 성인이 되었을때 부모는 어떤 관계맺기를 통해 아이를 도울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에 속아서 지낸다. 내가 고함지르고, 성내고 짜증내는 것은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병들게 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엄마수업>은 초보엄마, 예비엄마들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 또 성인이 되어버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자녀와의 관계맺기를 새롭게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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