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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흑산]조선백성의 핍박과 나꼼수의 열광




> 김훈의 흑산

김훈의 작품이다. 그의 단문에서 느끼는 섬세한 표현은 글의 표현뿐만 아니라 우리들 생활언어에서도 흉내내고 싶은 대목이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남한산성>에서 계절의 변화,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가슴죽이며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설레임으로 <흑산>을 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2% 부족하다. 내용전개가 너무 느리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표현하다보니 각각의 섬세함은 있지만 전체적인 연결성이 너무 떨어진다. 중반이 넘어갈때까지 뚜렷한 사건전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다. 겨우 읽어냈다.

> 흑산도와 천주교박해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담았고, 관련된 지식인들과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익숙한 정약용과 관련된 시대상황이고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흑산도로 유배되어 <자산어보>를 남긴 그의 형 정약전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렇다고 전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아우 정약용도 있고, 조카사위 황사영도 있다. 이 부분들은 역사속에서 익히 알고 있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소설이기는 하지만 등장하는 민초들의 삶은 새롭기만 하다.

정약전, 정약용, 황사영 등의 이야기는 기존 역사적 지식외에 그 당시 그랬을 법한 그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민초들의 삶은 조선시대의 생활풍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린다. 분명 그들의 삶 또한 우리들 선조들의 삶이며 지금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이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진행형이라는 것이 새삼 가슴 뜨겁게 한다.

> 백성들의 고단한 삶

천주교 박해 - 당대에는 혹세무민하는 서양사상이라고 단정하고 그들을 처단하기에 급급하지만, 조정을 비롯한 지배계층은 왜 그들이 천주교를 신앙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민초들의 피폐한 삶은 굶어 죽고, 맞아서 죽어가면서 고향을 등지고 떠돌이 생활로 이어지면서 '천주교'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의지하고 싶었을게다.

인기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피폐한 삶을 견뎌나가는 조선 민초들의 참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극의 빠른 흐름과 스토리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배계층에 대한 막연한 피해자로서의 동질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그 이전의 시대에도 그랬고,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지배계층은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기 보다 그들 자신의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들의 견해에 반하는 세력은 척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 나꼼수와 SNS에 열광하는 민초들

MB정부의 실책으로 손꼽아지는 경제정책과 대북정책 등의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단 MB만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 정치인들의 행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시대는 좌우, 진보-보수 등으로 색깔을 나누어 싸우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18, 19세기의 '천주교'신앙같은 행위는 지금도 이어질 것이다. '나꼼수'같은 인터넷 라디오방송에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의 서학(천주교)에 몰두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하고, 왜 '나꼼수'에 열광하는지 민초들의 삶을 미세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가카를 비난한다고 어떻게 잡을지만 몰두하지 말고 그 속내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민초들의 천주교 입교에 대해 그들을 찾아내 처형하는 것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이다. 나꼼수를 처벌하거나 SNS의 폐해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왜 대중들은 거기에 열광하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안철수 바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좌우를 가르고, 진보-보수를 가르기에 바쁘다. 그래서 내편 아니면 네편이라고 쉽게 말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안철수가 말하는 '상식-비상식'의 논리에 대해 귀를 막고 있다. 백성들은 서로 눈빛만으로 다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지배계층에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