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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지리산 행복학교에는 학생은 없고 선생님만 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 10점
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2010-11-25
< 도서구입은 책표지클릭


미국에 계신 지인과 연락을 주고 받다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니, <지리산 행복학교> 읽으며 배꼽잡고 있어요, 한다. 공지영작가의 <지리산행복학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벌써 들어 알고 있었다. 서울에 사는 공지영작가가 지리산에 가서 살면서 기록한 책이라고? 말도 안돼! 며칠 가보고 느낀 감상들을 작가의 힘으로 그냥 써 내려간 책이겠지. 그런데 그 지인의 이야기에 궁금증이 더해졌고, 또 평소에 책을 즐겨읽고 많이 읽는 분이라 ‘강추’로 해석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

최근 마련한 아이폰에서 e-BOOK으로 구매했다. 종이 넘기는 맛과 글자의 크고 작은 배치, 칼라를 소중히 여기는 평소의 신념과는 달리, 도대체 e-BOOK이 얼마나 읽혀지나 하는 반신반의의 실험정신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책을 펼 수 있는 것이 e-BOOK이다. 특히 화장실에서 뭔가를 읽어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안성맞춤이다.


같이 앉아서 맥주 한 잔 들이키는 기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읽는다기보다 지리산의 그들과 함께 앉아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들이키는 기분이었다. 결코 낯설지 않았고, 어색하지 않았다. 그 안에 끼지 못하는 것 같을때는 조금 아쉽고 그 안에 있는 서울내기 꽁지작가가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가운데도 실상사 앞 골짜기에 흙집을 짓고 사는 노총각이 있다. 염색을 주로 하고, 간혹 논농사도 조금 짓기도 하는 것 같다. (농사짓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염색을 주로 한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내가 내려갔을때는 하는 것을 못봤다. 서울에서 환경운동 10년넘게 하다가 건강을 핑계로 귀농해서 내려갔다가 지금껏 살고 있다.

이 노총각이 흙집을 짓고나니 서울서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지리산행복학교>에서 꽁지작가가 살짝 언급했듯이 이 사람들도 오랫동안 보지못한 친구를 찾아서 온다고들 하지만 각자 자기들 먹을 것 싸가지고 휴가차 내려온다는 것이다. 주말에는 종종 집이 가득차기 때문에 가능한 평일에 방문해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아예 옆에다가 흙집을 하나 더 지었다. 친구들이 자기들이 출자(?)해서 지었다고 한다.

이 노총각이 하는 말이 있다. 여기 올때 빈손으로 와도 되는 사람은 니 밖에 엄다. 아무도 빈손으로 와서 먹을 것 달라는 사람 엄다. 지 먹을 거 지가 싸서 와야지. 하지만 니는 돈을 안버니까 개안타! 오랜만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이것 저것 싸오는데 먹고 남은 것으로 지낸다고 한다. 고알피엠여사처럼 말이다.



▲ 낙장불입 시인의 집


불안한 40대를 위한 희망시

낙장불입 시인이나 버들치시인의 경우에는 수경스님과 함께 도보순례에서 이래 저래 몇 번 만났다. 검게 그을린 그들을 온몸으로 반기며 도보순례 중간중간에 행사를 마련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이 몸으로 쓴 시를 들으며 시가 살아있고,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곤 했는데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알게된 그들과는 차이가 있다. 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무겁고 비장함이 있었다면 책속의 그들은 편안함 그 자체다. 세상의 변화는 비장함보다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에 확신을 더해주는 모습이다.

그동안 소유와 소비가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에 대해 비판해왔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경쟁과 갈등이 우리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왔고, 또 그 속에서 자연환경의 파괴는 필연적이고 그 결과는 다시 우리들의 삶을 황폐화시킨다고 강조해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의 실천들이 필요하다고 방법들을 찾아다녔다. 개인의 행복한 삶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또 공동체의 삶이 왜 중요한지도,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찾아 해맨것 같다.

그러나 여기 공지영작가가 이야기하듯 써내려간 <지리산의 행복학교>는 그 어느 대안적인 것들보다 대안적이다. 박하향이 입안에 머물듯 싸한 개운함이 감돈다. 나이들어도 풋내나는 삶이 가능하고, 옆구리라도 쿡 찌르면 간지러워 자지러지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말에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20대의 청춘은 이해 못할 자유가 있다. 40을 넘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이후의 삶이 불안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