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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버티다

MB에 대한 김수환추기경의 가르침




김수환추기경이 2009년 2월 16일 오후에 선종하셨다. 가톨릭전체의 슬픔을 넘어 한국사회의 눈물이다. 언론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소식을 알리면서 그 분의 과거 행적을 돌아보고 또 많은 사람들의 추기경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수많은 언론의 소식에 덧붙여 내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 김수환추기경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병실에 계시면서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이명박대통령도 병문안을 다녀갔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우리들이 김수환추기경의 선종에 함께 슬퍼하는 것은 이 시대의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로 아이들은 자란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대립, 좌우의 갈등 등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한갓 종이쓰레기만도 못한 이념의 논쟁에서 헤어나지 못할때가 많다. 경제논리의 허구가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듯, 또 그렇게 이념의 논쟁은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수환추기경을 대신할 우리시대의 어른은 누구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른으로 모시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른이 계셔도 어른으로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정부에도 그랬고, 지금정부도 마찬가지다. 항상 사회적 갈등은 있어왔다. 그것이 사회의 자연스런 현상이고 발전의 과정이라 여겨왔다.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없어야 한다기보다 그것을 지혜롭게 해소하고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쇠고기수입문제로 불거진 촛불의 민심과 그 후 촛불민심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보라. 건강한 비판세력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용산참사’를 대변되는 철거민문제, 4대강 정비라는 이유로 찬반이 거센 ‘한반도 대운하’문제,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상생이라는 남북관계도 ‘긴장’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어느 정책이 옳다, 또는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깊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누가 잘하고, 또는 누가 잘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반목이 깊어질때 우리사회의 어른의 역할이 분명 있을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른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른을 모시지 않는다. ‘어른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 말을 잘 듣지 않을때 어른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것에는 법과 원칙만이 시퍼렇게 날세우는 차가운 세상이 될 것이다. 먼저 사람과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관계속에서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야지 법과 제도 속에 사람을 옭아매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그렇게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족을 더하자면 이명박대통령이 김수환추기경의 병문안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는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