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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버티다

화장지, 우리집에선 안 키웁니다


화장지, 우리집에선 안 키웁니다



제천에 살고 계시는 안기숙님의 이야기입니다. 제천에서도 다시 시골로 버스를 타고 약 40분정도 들어갑니다. 학교에 딸린 사택에서 텃밭도 일구고 간소한 삶 속에 행복을 찾고 있는 안기숙님은 남편과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서너 달 전에 제가 제천에 갔다가 전화를 했더니 꼭 집에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라기에 찾아갔었습니다. 오래된 학교사택에서 풍기는 옛스러움이 있더라구요. 아래 글은 제천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한실람의 회원이기도 한 안기숙님의 글을 옮겨싣습니다.

고유가시대,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활고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관되지 않은게 없다는게 실감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모든게 연관되어 동반상승하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명박정부도 새롭게 구성된 내각에 '고유가시대, 생활경제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수립하라'고 했다지만, 어디 그게 쉬운일입니까? 한 국가의 지도자가 나서서 '고유가시대, 어려운 경제상황입니다. 국민여러분 함께 허리띠를 졸라맵시다' 한다고 한들 지금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따라줄 국민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숙님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들은 돌아봐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소박한 생활을 통해 검소하게 사는 것이 새로운 문명의 대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대한 브레이크가 작동되는 듯 합니다. 

『 "화장지, 우리집에선 안 키웁니다" 』

"화장지, 우리집에선 안 키웁니다"

우리집에 오신 손님들은 이리저리 찾다가 저에게 와서 찾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화장지'랍니다. 한 4년 전부터 우리집에서는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행공동체 정토회의 '쓰레기제로' 운동이 마음에 들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일이 늘 마음을 무겁게 했거든요. 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제가 화장지를 처음보고 쓰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참 귀한 물건이라 함부로 쓰지 않았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물을 흘리거나 음식물이 묻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걸레나 손수건을 쓰기보다는 아까운 줄도 모르고 '우아하게' 화장지를 뽑아서 썼습니다.

이렇게 한 10년을 살다가 '쓰레기제로'의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우리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살펴보니 비닐쓰레기와 화장지쓰레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지부터 집에서 없애기로 하고 화장지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거실에는 손수건과 걸레바구니를 놓아두고 부엌에는 행주와 헌옷을 잘라(기름기 있는 프라이팬을 닦는데 쓰임) 넉넉하게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가방에도 손수건을 꼭 넣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감기 걸렸을 때도 아이들이 먼저 학교 가기 전에 손수건을 챙기고 무엇인가 닦을 일이 생겨도 "화장지 어디에 있어요?"라는 말은 잊은 듯합니다.

어느 집이나 화장지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화장실이겠지요. 저희집에서는 그것도 '뒷물'을 하고 '뒷물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줍니다. '뒷물'이라는 말이 낯설지요? 뒷물은 비데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는데 물바가지와 PET병, 샤워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5천원 정도 하는 뒷물용 수도꼭지를 설치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고급 호텔에까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가장 위생적인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비데는 구입비도 비싸고 전기가 소모되고, 물 수압이 약해서 덜 시원하다고 합니다. 물기는 개인용 뒷물 수건을 마련해서 쓰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일단 한번 해보시면 어느덧 화장지는 쓰기 찝찝해서 닦기가 싫어집니다. 어른뿐 아니라 우리집 세 명의 아이들까지도 너무 좋아하고 있는데, 집에서 쓰레기 제로운동을 실천해 보고자 하는 '가족환경실천단'에 가입하여 이런 방법을 듣고 직접 해보신분들은 모두 생각보다 훨씬 더 상쾌하고 해볼만 하다고들 합니다.

제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이런 방법들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은 '환경실천은 혼자서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는 어설프더라도 여럿이 함께 할 때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살림 회원 분들은 <죽임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를 창조하는 분들이니까 꼭 실천하실 거라 믿습니다. 일단 한번 해보세요. 환경과 기아의 문제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화장지 사는데 쓰일 돈이 남게 되면 환경파괴로 몇 년씩 가뭄이 들어 굶어 죽어가는 배고픈 어린 친구들을 살리는 데 쓰는 것이 그동안 많이 쓰고 많이 버린 우리의 죄갚음이 되지 않을까요?

제 남편은 주유소에서 화장지를 주면 "우리집은 화장지를 안 씁니다"하고 거절을 하고, 이사 했다고 가져다주는 화장지와 세제 등은 동네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제천=안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