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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다

미니갤러리 9번째 : 망자모비가 亡慈母悲歌



다시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생기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봄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천천히 저 아래쪽부터 올라오고 있는 즈음에 미니갤러리 아홉 번째 전시회가 마련되었습니다.
한 점의 작품으로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가는 미니갤러리 아홉 번째 작품은 <망자모비가 亡慈母悲歌>입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해서 눈시울 적시게 만든다고 타박하지는 마세요.
울릉도의 북면에서 순간포착으로 담은 ‘구름’이 전하는 이야기에 개인들의 삶의 질곡을 겹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구름이 만들어지고 흩어지는 것이 허상임을 알고 거기에 마음을 담아 위안 삼는다는 것이 번뇌와 망상인줄 안다면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허상을 통해 진실본성을 깨닫는 미니갤러리 전시회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2012.2.21(화) ▶ 3. 12(월)

◈ 전시명 : 9번째 미니갤러리  - <망자모비가 亡慈母悲歌> 展
◈ 일시 : 2012년 3월 22일(목) ~ 4월 20일(금) 오전 9:30 ~ 오후 6:00
※ 3월 22일(목) 오후3:00 오프닝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 장소 : 행복한 책방(02-587-8991)
◈ 온라인 전시 : 에코동의 서재 (http://ecodong.tistory.com)
◈ 주최 : 행복한 책방, 법보신문, 에코동의 서재, 휴심정, 한겨레출판, 시공사, 김영사, 희망플래너, 늘보공방, 청주미술특송, 생각정원

<망자모비가亡慈母悲歌> 118cmX70cm, C-print, 박영숙․이문선, 2012 행복한책방


> 작품소개

3월에는 학교마다 입학식이 있다. 요새는 워낙 학교에 관심이 없어서 주변에서 아이들 졸업식이다, 입학식이다 하면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내 어려서 입학할 때에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학교라는 곳을 갔다. 어머니는 졸업하기 전에 몇 번인가 가을 운동회 때 마을사람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는 오기는 했지만 기억에 별로 없다.
내가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에는 유치원이 없었다. 적어도 산골 우리 마을에는. 한참 세월 지나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유치원 다닐 나이는 훌쩍 지난 뒤였다. 그렇게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엄마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 옛날에 학교를 다녔던가 다니다가 말았던가 해서 한글을 겨우 깨쳤던 엄마에게서 나는 모든 교육을 받은 셈이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재촉하던 비가 어느 즈음에 내리면 방문 열어두고 엄마 무릎에 앉혀 ‘가갸거겨’를 익혔다. 부모들이 자기 자식 안고서 뽀뽀해가면서 예뻐하는 것을 간혹 볼 때면 내 어릴적 그 비 오던 날이 생각난다. 무릎에 앉혀놓고 ‘가갸거겨’를 읊으면서 내 어머니가 그리했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아는 몇 명의 동료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남이면서도 뚜렷한 직장 없이 워낙 떠돌이 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문상객들도 대부분 동생들 지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계셨는데 장남이 아들노릇을 톡톡히 한 모양이다. 뚜렷한 직장이 없다보니 병간호를 곁에서 할 수 있었던 거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장남과 차남이라고 다를까마는 무던히 슬픔을 잘 누르고 있었다. 제 나이만큼이나 긴 세월 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고, 켜켜히 쌓인 인연의 폭과 깊이를 한순간에 떨쳐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새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일을 치르지만 내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은 집에서 죽어야 했다. 집 밖에서 죽으면 ‘객사(客死)’했다고 해서 마치 큰 우환이라도 만난 듯했다. 그야말로 상주를 비롯한 유가족들에게는 큰 슬픔이겠지만, 마을에 초상이 나면 결혼 때만큼이나 큰 잔치가 열린다. 장례 자체가 잔치이고 축제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돼지 한 마리 잡아서 고기를 썰어내고, 국을 끓여내면 부족할 것이 없었다.

내가 대학을 마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즈음이었는데 졸업생환송회 같은 것을 동아리방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시골집으로 달려갔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돌아가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의 인연의 고리를 끊을 때에는 어떤 표정으로 슬픔을 맞이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 자체에 대한 슬픈 감정보다는 내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의 단절,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서운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옆에 사람이 말릴 때까지 한참을 엉엉 소리 내며 엎드려 울고 나서는 그 뒤로 엄마의 죽음 앞에 눈물 흘리지 않았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쳐도 내가 그렇게 울고 있다면 내 어머니가 걱정되어 떠나지 못하는 무주고혼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딱 울음이 멈췄다. 한참을 통곡하며 우는 것은 정을 떼는 시간이었다.

이번 작품은 울릉도 북면에서 바라본 바다 위 하늘이다. 주제가 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선비’의 모습은 ‘구름’이다. 순간포착한 것이라고 작가는 전한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구름의 모양이 해태상 같다고 하며 꿈풀이 하듯이 각자 서로 다른 의견을 내지만 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픈 선비의 눈물’이 떠올랐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결혼여부에 따라 상복을 입는 차이가 있었고, 일가친척에 따라 입는 종류가 달랐고,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여하튼 머리 위로 포건을 쓰고, 길게 건을 올린 뒤 삼으로 꼬아서 만든 수질을 머리에 둘러쓴다. 그리고 삼베로 된 옷을 입고, 짚과 삼을 섞어서 만든 동아줄같은 요질을 맨다. 대나무나 오동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우리네 전통복장이 멋스러움이 가득하듯이 상복도 그러하다. 부모의 죽음으로 슬픔이 가득하지만 상복은 화려하다. 색깔이 요란하다는 게 아니라 구름 모양새처럼 차림새가 남다르다는 말이다. 이번 작품의 제목을 <망자모비가 (亡慈母悲歌)>라 붙인 까닭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그들이 남긴 저서 때문에 다른 역사인물보다 세인에 많이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이나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어려운 가정 살림을 어머니가 혼자 꾸려왔다거나, 자식의 공부바라지를 위해 삯바느질하거나 행상을 하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었다는 이야기, 아버지의 기세에 눌려 큰 소리 한번 하지 않았지만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소리없이 전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는 흔히 들어온 것들이다. 정약용과 박지원, 특히 박지원과 함께 오랫동안 어울렸던 박제가, 이득무 등의 서얼출신 실학자들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유교를 몸에 새기고 행동하던 그들 선비들의 부모에 대한 효심과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은 어땠을까. 경상도 남자들의 무뚝뚝하고 텁텁한 말투와 행동이 상상되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책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옛 어른들도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이별을 아파하고, 다시 그리움에 목말라하면서 시를 짓고 노래를 읊으면서 스스로 달랬다. 이러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애틋함을 표현하는 운치는 과거 선비들의 그것이 더욱 깊다. 특히 부모를 여의고 회한의 눈물 흘리지 말라는 교훈적인 노래들은 자못 가슴아프다.

부모님 계실 제는 부몬 줄 모르다가,
부모님 여읜 후에 부모님을 알게 된들,
인제야 이 마음 가지고 어디다가 베푸료?
이숙량

작가는 각박한 도시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육십을 넘긴 형님을 만나러 울릉도를 찾았다. 바다로 이어지는 작은 언덕 위에 마을이 있고 형이 살고 있는 집이 있다. 그 앞에는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작은 평상이 놓인 마당이 있다. 지도상 북한을 향해 바라보는 울릉도의 북면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다 한다. 아마도 매서운 북풍을 피해 남면으로 이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순간포착’이라고 해도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법륜스님은 죽기 직전에 ‘나무아미타불’ 10번을 간절하게 부르면 극락세계에 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면서 ‘평소에 염불하는 마음과 정진이 없으면 죽기 직전에 간절하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일상의 정진이 중요하다’고 하신 적 있다. 울릉도의 북면에서 바라본 일몰의 한 점 구름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담는 일은 준비된 ‘순간포착’인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긴 세월 함께한 어머니와의 인연을 며칠만의 통곡으로 끊어내기는 쉽지 않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정을 뗐다고 하지만 살아가면서 어머니와의 시간이 잊혀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구름을 보는 순간 어머니를 잃고 슬피 우는 조선의 선비를 떠올린 것과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겹쳐지는 것은 아직 내 안에 어머니가 살아계시기 때문일까. 해마다 우란분절에 어머니를 떠올리며 천도재에 참가할 때도 어머니를 애달프게 부르게 된다. 당신의 길을 막는 남은 자의 헛된 욕심이고 진정한 효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어머니의 눈빛과 손길이 잊히지 않는 것은 자식으로서 어쩔 도리가 없다.
구름이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안다. 그 구름에 마음을 얹어 어머니를 떠올리고 조선의 선비를 떠올리고 있다. 온갖 생각으로 흘러다니는 마음이 번뇌와 망상인줄 알면 어머니의 천도는 마친 것이라 하는데.

박석동 (에코동의 서재 http://ecodo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