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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고려대장경이 짝퉁이었다고?



고려대장경이 짝퉁이었다고?

고려대장경 - 그것이 담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범위에서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니까. 처음 대장경이 조판되기 시작한 해로부터 1천년의 세월이 지났다. 추천사에서 이어령 당시 고려대장경 천 년의 해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준비위원장은 '즈믄해'의 의미를 되새기며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감동적이다. 문화적 컨텐츠로 과거의 유산에 대한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다시 미래로 향하고 민족적 결속력을 제안하는 것은 감동이지 않을 수 없다.

몽고군의 침략에 맞서 외침을 격퇴하기 위해 만든 '고려대장경'에 대해서 어린시절, 종교적 힘 - 주술적 힘으로 외침을 물리칠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대한 대장경을 조성한다는 자체가 국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경을 조성한다는 그 말만으로 물러갔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논리가 아닌것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세가지를 발견했다.

먼저 붓다의 가르침이다. 대장경이 전하고자 했던 그 당시의 붓다의 가르침이 구도의 열정에 가득찬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재산이었겠는가 하는거다. 대장경에 담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그때의 정황을 소개하면서 붓다와 제자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모습을 드라마 보듯이 설명해 주는 부분에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새롭게 각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불교를 공부한다고 했지만 붓다의 면모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두번째는 대장경에 대한 이해다.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하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그것을 다시 배낀것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짝퉁'이라고 지른다. 가슴이 철렁한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던 대장경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은 무엇인가? 그 기대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한편으로 막연하게 가졌던 기대는 저자가 대놓고 그렇게 '짝퉁'을 운운하는 배경에는 또 다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다. 글을 읽어 가면서 그 짐작은 맞아 떨어졌다. 이후 수많은 개정과 추가를 통해 '짝퉁이 아닌 진짜배기'를 창조한 것이다.

세번째는 대장경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점이다. 해인사에 잘 보관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대장경에 대한 집요하리만치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집필한 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이것은 깊은 애정없이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대장경에 대한 연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는 현대인들에게 구체적인 힘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의 유물로서의 대장경에 대한 해석일 뿐일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솔직담백한 연구와 주장을 통해 대장경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그 과정을 알게 됨으로 '천하를 담는 그릇'으로 '소통하는 그릇'으로 진화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새로운 천년의 미래를 담는 것이다.

의천이 상상한 과거의 천 년, 그는 천 년의 순간, 또 다른 천 년의 순간을 꿈꾸기 시작했다. ‘다시 천 년을 비추게 하려는 일’이다. 천 년이 채워지는 바로 그 순간, 의천이 천 년이라는 시간을 인식하던 바로 그 현재의 시점에 서서 그는 과거의 천 년과 미래의 천 년을 함께 그리고 있었다. - 「천년의 순간」중에서, 198쪽


지금 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길을 이 대장경에서 찾아야 하고, 대장경을 조성해 오던 선조들의 정신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종교로서의 불교를 넘어 우리사회의 일상적 지혜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불교계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과제에 대한 해답은 대장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조 고려대장경의 대방광불화엄경 1권 첫머리. 고려대장경연구소 제공

저자소개 | 오윤희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봉선사 월운강백 문하에서 한문 불전을 익혔다. 1980년대 말, 불전 전산화에 뜻을 두고 외국의 불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고려대장경전산화를 위한 준비를 했다. 1993년 해인사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 설립에 참여하였고,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 ‘비백교학연구소’ 등을 창립, 불전전산화에 관련한 일에 매진했다. 2005년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에 취임, 2010년까지 ‘한일공동고려초조대장경 디지털화 사업’을 완료하였으며, ‘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 ‘고려대장경이미지연구지원시스템’, ‘고려대장경-돈황사본 대조연구지원시스템’ 등의 프로젝트들을 기획, 추진했다. 2006년 ‘고려대장경 천년의 해’ 기념사업을 제안, 추진해왔다. 저서에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호미, 200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