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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힘없고 소외받고 아픈 사람이 내 종교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주며 가르쳐 줍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 당시 가장 천대받고 무시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반쯤 죽여놓고 옷도 벗겨놓고 가더라. 그 때 한 제사장(사회적으로 지위가 대단히 높은 사람)이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한 레위인(사회적으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여행하던 중에 그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서 기름과 포도주(당시에는 굉장히 귀한 것들입니다)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데나리온 둘(1데나리온이 당시의 하루 품삯임)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세요. 돈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오면서 갚을게요.' 라고 하더라. 이렇게 말씀을 마치면서 예수님은 다시 묻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이야기>부분을 정리한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간결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다니지만 진정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원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간결한 가르침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이 바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서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나를 사랑해 주고 힘들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라는 교훈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궁극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는 청전스님의 만행이야기를 우리에게 소리없이 전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청전스님의 글을 보면서 수행자의 표상이 어떠해야 할지 안내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행자라면 고행하듯 걸어다니고, 돈이 없이 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풋풋한 그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생각이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뇌를 여의고 화두에 집중하는 오직 한 생각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투명한 맑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게 설명하듯 늘어놓았던 이유는 청전스님을 생각해서입니다. 만약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있다면 청천스님은 구원받을까,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청전스님은 구원을 받지 못하겠지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펴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인것이지요. 유대인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 당시의 논리에서 예수님은 강력히 반발하셨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했는데 다시 그 유대인의 논리를 갖고 구원을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교가 아닌 유대교를 신앙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종교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 살짝 옆으로 나갔지만 구원받을 수 밖에 없는 청전스님의 맑은 구도행과 만행은 글을 읽는 우리들을 동행자로 옆에서, 때로는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게 만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스님은 "힘없고 소외받고 아픈 사람이 내 종교"라고 말합니다. 성직자라면 반드시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하는 바른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님이나 신부ㆍ목사 등 성직자는 자신이 먼저 청정하고 청빈해야만 한다"며 수행자들의 지독한 자기관리를 강조합니다. 

책 제목을 잘못지었다 싶습니다.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라는 제목과 '스님'이라는 저자 때문에 이것은 특정종교로서의 불교에 갇히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를 만난 사람을 치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으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안에 개운한 맑음을 번지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소개 | 청전 스님
1972년 유신 선포 때 사회에 대한 자각으로 다니던 일반 대학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게 첫 번째 출가였다. 그 뒤 신학교에서 신부수업을 받다 1977년에 송광사로 두 번째 출가를 감행했다. 10여 년간 참선수행을 하다가 수행 과정에서 떠오른 의문들을 풀기 위해 1987년에 동남아의 불교국가들을 둘러보는 순례길에 나섰다. 그때 마더 데레사 등 여러 성자들과 더불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될 달라이 라마와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 1년간의 순례여행을 마친 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1988년부터 지금까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있다. 매년 찻길도 없는 해발 5천 미터 산속 곰빠(티베트 불교사원)에서 생활하는 망명 티베트 노스님들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간 중고시계부터 의약품, 보청기, 손톱깎이까지 져 나르는 일도 수행의 큰 축이다.
인도 생활을 마치기 전에 해야 할 숙제가 있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한국의 거사님이 내신 숙제인데 ‘달라이 라마의 온화한 미소를 배워오라’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리고 종교간 화합을 위해 정진하는 성직자의 삶을 꿈꾼다. 티베트 원전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과 《입보리행론》을 번역했고, 저서로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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