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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토마토 된장덮밥

세상에 없는 요리 - 토마토 된장덮밥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먹을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한다. 가능한 고기를 배제하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충분히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오늘 멀리서 지인이 요리책 한 권을 보내주었다. <채식의 시간> (이양지, 2013, 김영사)이다. 요리책은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라지만 재료가 구하기 힘들거나, 조리 도구가 없어서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한마디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아니면, 요리책 대로 근사하게 만들어 먹어볼 요량이면 재료비가 많이 들어 차라리 밖에서 사 먹는게 나을때가 많다. 



<채식의 시간>을 눈으로 훑어면서 느낀 것은 ‘해보고 싶다’는거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갖고 만들면 될 것들이다. 몇가지는 오븐이 없거나 재료를 구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지만. 방학이라 집에서 잠만자고 있는 조카에게 “첫페이지부터 차례로 만들어 볼까?”하고 제안해보지만 시큰둥하다. 내 혼자 할 일이다. 


이 책은 ‘생활의 지혜’같은 내용들이 몇 있다. 가령 맛간장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시중에는 100% 양조간장을 구하기 쉽지 않거나 비싼데 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요리는 익숙한 재료를 이용한 것이라 마음이 가볍다. 


<채식의 시간>을 보며 얻은 깨달음 –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깨달음 – 은 모든 음식에는 재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토마토 된장 덮밥”이다. 


먼저 된장찌개를 자작하게 끓인다. 거기에 토마토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아는 사람들은 토마토를 익혀먹는데 익숙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얼굴부터 찡그리며 ‘토마토를 된장찌개에 넣어?’, ‘된장찌개의 맛이 시큼해지는거 아냐?’하는 눈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방법은 – 이것 또한 정해진 법은 없다 – 말린 표고버섯이나 다시마를 넣고 물을 끓이다가 감자, 당근 등의 야채를 넣고 끓인다. 익을 때 즈음 된장을 풀어 넣으면 된다. 


오늘은 햇고사리가 있어 그것을 조금 볶았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물에 불린 고사리를 넣고 볶다가 다진 마늘과 간장을 조금 넣고 더 볶았다. 고사리볶음은 이것으로 끝.


자, 이제 준비된 재료들을 밥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밥 위에 된장찌개를 살짝 올린다. 토마토 된장찌개를 말이다. 그리고 고사리볶음을 올리고 쑥갓을 올렸다. 



천지만물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고 맛을 볼 시간. 평소에 밥보다 다른 재료를 더 많이 올려 먹기 때문에 간을 맞출 때 약간 싱겁게 맞추어야 한다. 역시 오늘도 재료가 많다. 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식감이 살아있다. 식후에 먹는 과일로서의 맛이 아니라 음식에 섞여 있는 식재료로서 말이다. 약간 새콤하고 달콤한 것이 연하게 입안에 퍼진다. 고사리는 채취한 후 삶아서 말린 것을 다시 삶아서 물에 불려서 조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막 뜯어다가 입에 넣은 부드러움이 그대로 있다. 다른 생 야채는 그대로 풍성한 맛을 준다. 오늘 밥은 현미 옥수수밥이라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촉감이 살아있네~. 


세상에 없는 요리, 오늘 처음 만들어 맛 본 것 치고는 꽤 괜찮다. 



내가 보는 요리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