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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소금은 아버지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

 

소금

박범신 장편소설 / 한겨레출판

 

 


여름이 오고 있다. 불볕더위가 예상된다고 일기예보는 여러번 강조하지만 귓등으로 흘린다. 며칠 전 비가 온 뒤 잠깐 더웠다가 내내 흐리다. 저녁으로는 춥다. 하나 둘 퇴근들 해서 모여든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자 시간이 되면 돌아온다. 집으로, 가족들이다. 뚜렷한 목적으로 가지고 모여서 가족을 이룬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톱니바퀴마냥 크고 작은 역할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매일의 일상이 똑 같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부랴부랴 출근준비해서 나갔다가 저녁되면 돌아온다. 휴일이거나 주말이 되면 간혹 그 질서가 달라지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또 어떤 모임이 있어 들어오는 시간이 조금 달라질 뿐, 큰 틀에서 바뀌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소설《소금》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동안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탈의 여정에서  만났다. 그동안의 일상이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위기’이자 ‘두려움’이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며 누나집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그들의 가족’을 새롭게 바라본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라짐’에 대해 막내 딸이 찾아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끝간데 없는 소비욕망의 상징으로 아내와 자식들은 자본이 주는 단맛을 위해 아버지에게 빨대를 꽂고 살아가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외로움으로 의도적으로 숨어버렸고, 새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 선명우의 과거 어린시절의 삶과 사랑, 이후 돈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이 땅의 아버지1, 아버지2, 아버지3과 같은 존재, 핏줄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새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오직 자기를 찾기 위해 떠난 ‘가출’이 가족속에서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가는 자신의 ‘외로움’때문이었다는 선명우의 삶에서 이 땅의 아버지1, 아버지2, 아버지3...아버지100은 떠나지 못하는 ‘망설임’을 같이 보았다. 아내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가족 때문에... 라는 끈끈하고 감동을 줘야만 하는 ‘핏줄’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젊은이를 위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들이 보아야 할 책들이다. 물론, 아내들은 ‘내 남편’의 삶과 생각, 외로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들은 ‘우리 아빠’의 고뇌에 대해, 나아가 자신들이 꽂아 둔 ‘빨대’를 들여다 볼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자신의 온 몸에 꽂힌 ‘빨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발견하더라도 사명감으로 스스로를 죽여가며 헌신하는 아버지들은 다르다.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하고, 사회구조를 바로 직시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사명과 역사로 묻어버리기에는 자신의 삶을 너무 초라하게 만든다.

 

실밥터진 메리야스를 떠올리는 첫사랑의 알싸한 추억이 있고, 평생을 간직해 온 그 사랑이 있고, ‘가족’이라는 것은 ‘핏줄’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고, 더더욱 아빠가 되는 것은 싫은 남자의 책임도 읽을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뭐라 할 수 없는 가슴먹먹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따뜻하다.

 

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다시 한 공간에 모여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이유로 지금 여기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묻어버릴까. 과연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산다고 하지만 그런 관념의 거짓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찾고는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