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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동의 하루

과거를 회상하며




김소영

'한다면 하는거지, 못할 거 뭐 있어?'하면서 이곳으로 온다고 했을때 반신반의했다. '설마'하는 마음에 변경된 일정을 밀어부쳤는데 그렇게 찾아올줄은 몰랐지. 또 근처있는 대현이라도 불러 함께 볼까싶어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더군. 여하튼 혼자 기다리게 한다거나 그냥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일정을 급선회해서 돌아왔지. 내 사정을 들은 일행들의 배려가 컸던것도 사실이고.

다시 돌아서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아사코와의 세번째 만남'같을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지. 차라리 안 만나는게 더 나은, 조금은 거리가 있어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을때가 있잖아? 멀리서도 널 알아보겠더구만. 신촌에서 만나고 10년만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촌에서 만났다는 기억밖에 없지, 구체적인 그때의 정황은 사실 기억못하고 말이야.

언제나 소심했던 네 모습때문에 내 기억의 한켠에는 '수더분한'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만나는 친들을을 보면 그동안의 경험세계가 달라 서로의 삶의 철학이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같아 내심 걱정하기도 했지. 대학다닐때 일찍 결혼하던 여자동기의 결혼식장에 친구들이 우르르 갔는데, 남자친구들의 위치는 정말 어색하더라고. 그때 주문을 걸듯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은 여자동기들의 결혼식장에는 안가겠다는 거였어.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하면서 혹시나 오늘의 만남이 다시는 널 못만나게 되는 또하나의 조건이 될까봐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때 친구들도 그렇고, 재수할 때 죽고 못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직도 1년에 한 번정도 가끔 전화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어. 말이 10년만이고, 다시 20년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숫자에 불과한 시간의 간극이었지.

나는 항상 내 삶에 대해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세상살이하는 많은 사람들의 치열함에 비해서 얼마나 느슨하게 살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하는 것을 무기로 삼았던 거지. 오늘 다시 너를 만나면서 그런 치열한 삶 속에서 수많은 관계들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삶 자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서로 공감대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억속에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큰 덩어리의 부분들뒤에 스쳐지나가듯 묻혀버렸을 법한 장면들도 꺼집어 올릴 수 있어 좋았다. 그것이 내 삶을 그만큼 더 풍성하게 하고 그것이 나의 앞으로의 삶에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하고 말이다.

간혹 어떤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각자의 삶의 행보속에서 각자의 생각과 동선이 자신의 시야안에서만 이루어지지만 그 밖에서 제3자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잖아. 동시대를 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과의 무관하지 않게 서로 얽혀있던 장면들 말이야. 마치 그 순간들을 꺼집어내는 기분이었어.

내 기억속에는 아직 20년이 넘은 그 시절의 삼가의 장날 모습밖에 없어. 길게 차양을 친 가방가게와 버스정류장으로 통하는 지름길 골목에 길가 노점에 풀빵팔던 어떤 아주머니의 기억이 생생하지. 거기도 많이 변했겠지? 5층 건물이 들어섰다니 변해도 많이 변했겠다 싶다. 그때 아웅다웅 살았어도 지금은 모두들 자기의 삶 하나 버겁게 꾸려가는 게 인간군상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추억은 여전히 아름답게 남는 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오래전의 친구들을 만나도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꺼집어 내고 서로 공감하고 웃고 떠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의 삶을 새롭게 나누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만의 생각이었지. 오늘 너를 만나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참 좋은 일이었어.
언젠가 김용택시인의 <오래된 마을>을 읽으면서 내 어린시절을 그대로 생생하게 떠 올려주는 것 같아 참 고맙게 여겼는데, 오늘 다시 너와의 만남이 그런 <오래된 마을>을 읽으면서 매캐한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중학교때 옆집에 살아도 항상 말도 없이 지냈다는 상기가 말을 걸고 지냈다면, 교실을 쿵쿵거리며 다니는 놈에게 큰 소리로 조용히하라고 했다면, 고등학교때 진주에서 동기들 모임이 이루어졌다면, 그 파편같은 추억의 조각들을 다시 붙여놓는다고 어찌 달라졌겠는가마는 새로운 상상을 해 보는 것도 가히 나쁠것만은 아닌것 같다.

신촌의 그 교회 뒷편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 찾아가는 날을 생각하며, 깊은 밤, 중학교 동기들의 몇몇 얼굴들을 떠 올리면서 네게 글을 쓴다. 먼 길 찾아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