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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책리뷰] 위대한 침묵 : 글 맛이 살아있다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잎’으로 잘 살고 있다!

저자 이윤기에게는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작은 책 『위대한 침묵』을 읽으면서 <글 맛이 살아있다>, <왜 이제서야 이 분을 만났을까?>, <노인네의 연륜이 이런것인가? 하는 생각을 계속 떠올렸다. 이 책이 끝나는 것이 두려웠다. 너무 서운했다. 다 읽고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 했지만, 그동안 내가 신화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려운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너무 터무니 없는 스케일에 장난같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이윤기의 신화이야기라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글 맛이 살아있다!

깊은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유머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다. 인문학이 그러하듯이 딱딱하다. 그런데도 이 분의 글에서는 그런 딱딱함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기 때문일것이다. 단지 먼저 살아간 사람으로서의 가르침으로만 끝났다면 시시했을지도 모른다. 세대차이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이웃 할아버지와 친구하고 싶은 정감어린 글이다. 자신의 내면의 성찰속에 이루어진 이 글들이 아마도 그런 감동을 주지 않았나 싶다.

문장 하나 하나에 남다른 면이 보인다. 그동안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다른 글맛이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글 맛>을 느끼며 읽은 책은 이 책말고 김훈의 <남한산성>이 있다. 그때 밑줄 그으가며 두 번, 세 번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분의 글도 그와 같다. 글 맛이 살아있다. 김훈의 서체가 그의 특유의 냄새가 있다면 이윤기도 그의 냄새를 풍긴다. 문장을 이어가는 것이 독특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문장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하듯 이어지는 문장, 그 사이에 쉼표로 연결되어지는 문장이 특별하다.




위대한 침묵위대한 침묵 - 10점

이윤기 지음
2011년 01월 14일 출간
양장본 | 177쪽 | 민음사
도서구입은 왼쪽사진 클릭



왜 이제서야 이 분을 만났을까?

나는 이윤기를 알지 못했다.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을 신문지상에서 보면서 그리스 로마신화이야기로 유명한 글쟁이였는데 돌아가셨구나 하는 또 하나의 정보를 얻는 것외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본 신문 부고 소식이 떠올랐고, 글 속에 살아있는 이 분의 털털한 생각들을 함께 공유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분의 글들이 이와 같다면 다시 이 분의 다른 책들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왜 이제서야 이 분을 만났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글들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하거나 철학적 사조가 분명하지 못한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못만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분을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하고 한숨을 쉬었다.


노인네의 연륜이 이런것인가?

나도 나이가 들어갸면 이렇게 진솔한 말 나누기, 마음나누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항상 늙어가는 것,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해서 그 깊이를 표현하는 <연륜>에 대해서 숙연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분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다. 나이가 많아서 거들먹거리지 않고, 아는게 많다고 남을 무시하지 않고, 대자연앞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숙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에세이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유명한 수필가들의 글들도 읽어보면 일상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너무 밋밋하다. 무슨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 감흥이 얕다. 그래서 수필류의 글은 베스트셀러라 하더라도 잘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윤기의 에세이라고 했을때, 노인네의 잔소리같은 가르침만 잔뜩 있겠지 싶어 처음에는 긴가 민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세를 고쳐앉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수필가들의 여느 에세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 책 제목인 『위대한 침묵』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보왕삼매론에 <억울함을 밝히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내면의 깊은 뜻을 <위대한 침묵>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러한 연륜을 닮고 싶다. 글 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와 같이 늙어가는 것을 닮고 싶다.


마지막 부분에는 번역가인 딸 이다희가 아버지를 추모하며 쓴 글 「아버지의 이름」이 담겨 있다. 그 글도 감동이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글이 예사롭지 않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번역가로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감동에 동의가 되었다.

자연에 대한 이야기, 우리도 아는 사람들인 지인들과 술마시며 있었던 에피소드, 신화와 고전, 문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 우리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비평 등을 자신의 진솔한 말로 글로 표현한 책 <위대한 침묵>은 한 번 읽고 덮어버릴 하찮은 책이 아니다. 책이 좋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글 읽기를 권하며 그 좋은 책을 꼭 권한다. 이번에 이 책도 마찬가지다. 만나는 사람마다 권하고 있다. 읽은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만큼은 멋들어지게 독특하게 써 봐야겠다고 차일 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쓴다. 잘 쓰거나, 특별하게 쓰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하려다가는 날짜만 그냥 흘려보낼 것 같아서 말이다. 이윤기를 한 번 만나보시기를 권한다.

저자소개 : 이윤기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 1'로 제29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번역 활동에도 힘을 기울여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변신 이야기'를 비롯, 2백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2000년 9월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 국제대학 초빙연구원(종교사) 및 동 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객원교수(비교문학)를 지냈다. 2010년 8월 27일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장편소설 '하늘의 문', '햇빛과 달빛', '뿌리와 날개', '나무가 기도하는 집', '그리운 흔적', 소설집 '나비넥타이', '두물머리', 산문집 '이윤기가 건너는 강', '무지개와 프리즘', '어른의 학교',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 등 수많은 책을 집필하였다.



<이윤기의 끝없는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