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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다

미니갤러리 11번째 : 회항 - 돌아오는 바다, 돌아가는 바다

미니갤러리 11번째 전시회

 

 

 

 

윤회와 집착을 넘어 회항하다
여름이 일찍 왔습니다. 이번작품은 목포 높은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은 것입니다. 바다가 있고, 배가 있습니다. 돌고 도는 윤회의 아픔과 집착으로 괴로움을 놓지 못하는 인간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은 작품입니다.
미니갤러리가 11번째 전시회를 준비하였습니다. <회항回航 : 돌아오는 배, 돌아가는 배>는 우리모두의 꿈이고 이상세계를 향한 염원일지 모릅니다. 윤회의 아픔과 집착의 괴로움을 벗어버리고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우리 본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부프로그램 <미니갤러리>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 2012.6.28(목) ▶ 7.31(화)


◈ 전시명 : 미니갤러리 11번째  - <회항回航 : 돌아오는 배, 돌아가는 배>展
◈ 일  시 : 2012년 6월 28일(목) ~ 7월 31일(화) 오전 9:30 ~ 오후 6:00
※ 6월 28일(목) 오후3:00 오프닝행사가 진행됩니다.
◈ 장  소 : 행복한 책방(지하철3호선 남부터미널역 6번출구 300m / 02-587-8991)
◈ 온라인 : 에코동의 서재 (http://ecodong.tistory.com)
◈ 주  최 : 행복한책방 ․ 법보신문 ․ 에코동의서재 ․ 휴심정 ․ 한겨레출판 ․ 시공사 ․ 김영사 ․ 희망플래너 ․ 늘보공방 ․ 청주미술특송 ․ 생각정원 ․ (주)재원프린팅 ․ 부북스

 

 

>> 행복한책방 미니갤러리 | 작품소개

 

회항回航 / 박영숙․이문선 / 118cmX70cm, C-print / 2012 행복한책방


회항回航 : 돌아오는 배, 돌아가는 배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건 열두 살 여름이었다. 큰누나가 남해 바다가 바라보이는 작은 학교에서 선생님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산골소년이 바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온 사람이 처음 눈을 본 것만치 내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바다를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드넓은 바다를 설명하고 내가 느낀 감동을 전했는데 이건 이후로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배를 타 본 것도 큰 이야깃거리였다. 누가 처음 배를 탔는지 생색내기를 할 때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갓난아기 때 엄마가 나를 업고 배를 탔노라면서 두 살 때가 처음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바닷사람들에게 배는 재산이고 가족이겠지만 산골소년에게 배는 그저 자랑스런 추억일 뿐이다.


스무 살이 넘어 대학에 들어가고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면 나는 바다를 찾았다. 산골소년은 산골소년답게 산속을 헤매거나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야 할 텐데 내 안에 산은 없었다. 산속에 살아서 오히려 산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어찌되었든 열두 살 여름의 강렬한 첫 경험의 추억 때문인지 내 우울을 털어내는 데는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 후로 바다는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그곳이 어느 바다이거나 상관없다.

미니갤러리 11번째 작품 <회항 : 돌아오는 배, 돌아가는 배>는 바다 위에 배 두 척이 전부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바다, 내가 추억하고 있는 그 바다가 아니다. 내 안에 수많은 물음이 밀려온다. 내게 ‘바다’와 ‘배’는 무엇인가? 이 배는 움직이고 있는가? 멈춘 것인가? 황금빛 흙색의 이것을 바다라고 볼 수 있을까?
작가는 이것을 목포에서 담았다고 했다. 이 정도의 바다와 배를 담으려면 유달산 정도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겠다 싶다. 유달산 공원의 바람이 콧등을 스치는 듯하다. 바람 담은 바다의 시원함과 소박한 두 척의 배를 있는 그대로 잘 담아도 좋으련만 작가는 왜 이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였을까.


푸른 바다 위에 떠가는 배 두 척. 그리고 황금빛 모래땅 위에 버려진 배 두 척. 아마도 작가는 이 두 가지 모습을 한 폭에 중의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움직이는 두 척의 배는 만선의 기쁨을 싣고 회항하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이 배는 산 위에서 불어오는 새벽의 바람을 등 뒤로 하고 뱃전에 두려움을 같이 실은 채 고기를 잡으러 나갈 것이다. 그렇게 두 척의 배는 일상의 꼬리를 물며 삶을 이어간다. 윤회輪回다.


법륜 스님은 <기도_내려놓기>에서 고苦와 낙樂, 행幸과 불행不幸, 지옥과 천당을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했다. 우리들은 윤회의 틀 안에서 반쪽짜리 행복을 추구한다고 지적하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모두 고苦라고 한 붓다의 말씀을 전하며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는 게 진정한 해탈이고 열반이라고 했다. 만선의 기쁨, 두려움을 동반한 출항, 사실적인 이 모습에서 윤회를 보았다면 황금빛 색을 입힌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모래땅 위에 버려진 두 척의 배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붓다의 뗏목과 같은 것일까. 뗏목은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마운 존재를 버릴 수 없어 머리에 이고 가는 우를 범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강을 건널 때 잘 사용하였다면 건너고 난 이후에는 버려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붓다의 진리마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대목에서 움직이지 않는 두 척의 배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자주 떠올리는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 관광객이 목가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소박하게 차려입은 한 사람이 해변가 모래 위로 밀려오는 파도에 흔들리는 낚싯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찍자 카메라 셔터 소리에 그 어부가 잠에서 깨어났다. 관광객은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날씨도 좋고 바다에는 고기도 많은데 왜 당신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더 잡아오지 않고 여기 이렇게 빈둥거리며 누워 있소?”
어부가 대답했다.


“내가 오늘 아침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고기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러자 관광객이 말했다.


“그러나 이걸 한번 상상해보시오. 만약 당신이 하루에 서너 차례 바다에 출항한다면 서너 배는 더 많은 고기를 잡아올 수 있소.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있소?”
어부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 일 년쯤 지나면 당신은 통통배 한 척을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2년만 고생하면 통통배를 하나 살 수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3년이 지나면 작은 선박 한두 척을 살 수 있게 될 테고,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 소유의 냉동 공장이나 훈제 가공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될 테고, 결국 당신이 소유한 여러 척의 어선들을 진두지휘해서 물고기 떼를 추적할 헬기도 장만할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당신이 잡은 고기를 대도시까지 싣고 갈 트럭을 여러 대 살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어부가 물었다.


관광객은 의기양양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고 나면, 당신은 멋진 해변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받으며 졸면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게 될 겁니다!”
그러자 어부가 관광객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거잖소!”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쁨과 안락에 대한 집착을 이 작품에서는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붓다는 고락이 돌고 도는 윤회의 삶이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에 집착하는 것은 궁극적 자유의 삶이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소유하기 위해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 아침이면 아등바등 어디론가 떠나는 것과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 이 자리에 더 머무르려는 모습 그 어느 것도 답이 아니라는 걸 이 두 척의 배는 보여주고 있다. ‘돌아가는 배’는 궁극에는 모두 버려야 할 무소유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